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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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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본지는 우리 역사를 알아야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인식에서 ‘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5·16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질까. 한국의 산업화 경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5·16과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전 세계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현대사 지식을 갖추는 게 글로벌 경쟁력이다.

 그러나 5·16에 대해선 아직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다. 두 가지 논란이 있다. 첫 번째는 5·16의 성격이다. 쿠데타이기도 하고 혁명이기도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쿠데타는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지배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고 나와 있다. 반면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5·16으로 ‘단순한 권력 이동’만 있었다면 쿠데타다. 근본적인 체제 변혁까지 있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으면 5·16은 혁명이다. 정치·사회·경제·문화가 큰 폭으로 바뀐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러시아 혁명과 같은 반열에 5·16을 올리기엔 변혁의 정도가 떨어질지 모른다.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 체제는 5·16의 산물이 아니라 제1, 2 공화국에서도 있었다는 것도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5·16은 우리의 ‘산업화 혁명’ ‘수출 혁명’의 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5·16은 적어도 ‘부분적 혁명’이다.

 5·16에 대한 두 번째 논란은 주역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관련 있다. 여야와 이념을 떠나 많은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을 ‘한국 산업화의 아버지’로 인정한다. 박 대통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 1위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산업화의 성공 요인을 꼽을 때 어떤 이들은 박 대통령에게 100%의 공로를 돌리지만 “단 1%도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5·16을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데 영국의 사학자·국제정치학자 E H 카(1892~1982)가 지은 『역사란 무엇인가』의 도움을 얼마간 받을 수 있다. 올해는 마침 『역사란 무엇인가』가 출간 50주년을 맞는 해다. 우리의 역사 인식에 1980년대 대학생·지식인의 필독서였던 『역사란 무엇인가』만큼 큰 영향을 미친 책도 드물다.

 E 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정의한다. 여기서 대화는 ‘현재에 속하는 역사가와 과거 사실(fact)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말한다. 한국사 교육을 등한시하는 것은 역사라는 대화를 저해하는 행위다. 그런데 ‘역사 대화’의 단절은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일어난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만 봐도 그렇다. 거기엔 한나라당이 기억하고자 하는 역사적 인물도, 사건도 없다. 인물의 정신과 사건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는 역사 서술과 의식은 있을 수 없다. 정강·정책 전문에는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고만 돼 있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인 보수’를 명시적으로 구체화할 수는 없을까.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전문의 ‘지난 60년’에는 5·16이라는 사건과 박정희라는 인물의 활동기가 당연히 포함된다.

 보수 이념을 대표하는 한나라당 정강·정책에서 5·16은 익명의 사건이다. 반면 국민의 상당수는 한국의 ‘산업화 혁명’이 박정희 대통령 덕분이라는 영웅 사관을 지지하고 있다. E H 카는 창조적 영웅이 역사를 만든다는 ‘영웅 사관’은 “원시적인 단계의 역사 의식에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E H 카의 말을 빌려 이 ‘국민의 상당수’를 몰아 세우기엔 ‘익명의 혁명’인 5·16과 ‘익명의 영웅’인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아쉬움이 너무 크다. 5·16 50주년을 맞은 올해 5·16과 박정희의 ‘실명화’ 작업이 본격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