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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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뭐가 나쁜 일인가요? 또 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건가요?" "…네가 좀 더 자라면 어째서 다정하고 예쁘신 부인의 목에 매달려서 키스하면 안 되는지 알게 될 거야." 그날 밤, 어머니는 나를 침대에까지 데려다 주셨고, 잠자리에서 기도를 올렸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좋아해서는 안 되는 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독일인의 사랑 중에서

'좋아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인생을 어느 정도 흘려 보낸 이후에야 가능한 것 같다. 누구나 경험해 보면 알게 되듯 사랑이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이라 인위적으로 막거나 돌이키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대상에는 분명히 제약이 있다. 그런 사실은 우리에게는 어쩌면 하나의 함정이다. 바로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한 남자를 보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유부녀'. 물론 그가 사랑을 시작했을 무렵엔 그녀는 유부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결혼을 '해 버렸고' 이제는 그가 그 사랑을 거두어야 하는 시기라는 것. 하지만, 그는 왜 아직도 마음 한 조각 줄 생각이 없는 그녀에 대해 연연해 하고, 그녀가 이혼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고, 그녀의 남편에게 '맞을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바보인가?

얼핏 생각하면 더 없이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그에게 슬며시 동정심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런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도 사실은 그 사랑에서 필사적으로 헤어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일단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토록 헤어나는 것이 어려운 걸까?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자신의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지 알면서도 깨끗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걸까?

이럴 때, 우리는 '중독'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좀 학술적인 의미로 '중독'이란 '어떤 사람의 감각, 물건, 사람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커서, 그 사람이 환경이나 자신 안에서의 다른 것들을 인식하고 다루는 능력을 감소시키고 만족을 얻기 위해 오로지 한 가지 경험에만 집착하고 의존하게 될 때'를 말한다.

사랑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 일부는 이렇듯 사랑을 다소 병리적인 '중독'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즉,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한 심리에 대한 완화제로써 환각제 대신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 역시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특히 불안정한 인성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심리적인 생존을 위해 중독적인 사랑의 관계에 훨씬 더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사랑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토록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주 오랫동안 고통받는 모습으로 그려진 인물은 남자가 압도적이라는 것. 실제로 이런 식의 연구에서는 독신 여성들이 독신 남성들에 비해서 사랑에 대한 의존적인 관계 없이도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

이 연구 결과들과 통계 수치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서 이 사랑의 함정들이 드라마를 좀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얼마나 더 오래 고생을 한 이후에야, 어떤 각성으로 그 사랑을 종결짓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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