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한 지방의원의 고백

중앙일보

입력

"괜히 귀찮게 한다는 식의 공무원들의 태도에 밀려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합니다. "

서울 양천구 이상재(李相宰)전 의원은 97년 지자체의 엉터리 결산보고서를 생생히 체험했다.

예산 전문가로부터 결산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는 등 의욕적으로 대비했던 李씨는 결산보고서를 훑어보다 똑같은 내용인데도 앞쪽의 총괄부분과 뒤쪽 부속서류의 숫자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李씨는 당연히 오류를 지적하고 예산결산위원회에 상정된 결산승인건을 보류했다. 구청측은 6일 뒤 74쪽에 걸쳐 3백8곳의 잘못을 바로잡았다며 새로운 결산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또다시 초보적인 오류가 발견됐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미안해하기보다 "국비보조비.구비 등 큰 항목별 총액만 맞으면 됐지 세부항목까지 어떻게 일일이 맞추느냐" 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李씨는 결국 28곳을 더 바로잡은 뒤 본회의에서 결산서를 통과시켰다. 李씨는 "당시 이 과정을 겪으면서 몇년동안 결산위원으로 일하면서 과연 결苑퓔?제대로 했는지를 자신할 수 없었다" 고 고백했다.

李씨는 "기초의회 의원들이 '대부분 '지역구 사업이 걸린 예산심의에는 목을 매면서도 정작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확인하는 결산심의에는 무관심하다" 며 "구의원들의 무관심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키우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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