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감청 무제한 연장 …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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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수사 목적의 감청을 무제한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한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조항이 헌법이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8일 통비법 6조7항이 통신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헌법 불합치) 대 2(위헌) 대 3(합헌)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법적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개정 시한인 2011년 12월 31일까지 이 법조항을 유지하기로 했다.

 현행 통비법은 감청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살인이나 약취·유인 등의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를 가능성이 큰 경우에 한해서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역시 감청이 가능한 대상이다. 통비법은 감청 기간을 2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감청 사유가 존속하는 경우 기간을 무제한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헌재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본 것은 바로 이 조항이다. 헌재는 헌법 18조 ‘통신의 자유’ 중에서도 ‘통신의 비밀’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지적하면서 무제한 감청이 통신의 비밀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인권을 존중한 결정이지만 수사력 약화에 대한 걱정이 나온다. 일례로 이번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모씨 등은 당국의 허가 없이 북한에 드나들고 북한 공작원 등과 통신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이다. 이 같은 보안법 사범 등에 대한 수사가 통상 수년간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권 보장에 남다른 프랑스도 ‘행정 감청’ 제도를 두고 국가안보, 국가 핵심기술 보호, 테러 및 조직범죄 예방 목적인 경우 해당 기관이 영장 없이 총리의 허가만 받으면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감청 기간은 4개월이나 무제한적으로 연장할 수 있다.

 행정 감청은 좌파가 집권했던 1991년에 만들어졌다. 다만 ‘국가안보감청통제위원회’가 사후 감사를 하도록 돼 있다. 일반 사법 감청의 경우도 수사판사가 영장 없이 감청을 할 수 있고 기간은 무제한 연장할 수 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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