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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큰 공통성 안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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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올해도 다 저무는데, 2010년 12월 3일 청와대 행사는 기억됐으면 한다. 중앙일보와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세원) 공동 주최로 올 3~11월 매달 한 차례 진행된 ‘보수-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라는 토론회가 있었다. 청와대 모임은 이를 결산하는 자리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통합 컨센서스 2010’이 발표됐다. 최근 천주교 사태는 청와대 모임을 주목할 필요성을 더욱 높인다. 종교 분쟁이라기보다 이념 갈등에 가깝다는 점에서 그렇다. 올 1월 토론회 기획 당시 다종다양한 이념 갈등을 도마에 올렸지만, ‘보수-진보 갈등의 천주교편’은 생각지도 못했다.

 ‘보수-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는 일종의 ‘맞짱 토론’이었다. 보수-진보의 공통분모를 확인한 첫 시도라는 점을 특기할 만하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이 특정 이슈를 놓고 토론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많았지만, 양측이 서로 간 공통점을 찾아낸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민주주의·경제체제·세계화·복지·지방분권·교육·고용위기 등을 테마로 양측 전문가가 내놓은 공동 합의안이 ‘사회통합 컨센서스 2010’ 골자를 이룬다.

 3월 첫 토론회가 열렸을 때만 해도 서로가 어색해했다. 주최 측도 발표·토론자도 마찬가지였다. 공통점을 찾아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편을 극단으로 몰아세우며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로 익숙해 있었다. 토론회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바뀌어 갔다. ‘토론의 기술’ ‘합의의 기술’이 향상되는 것이었다.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양측이 같아질 순 없었다. 하지만 상생과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양측 공통분모의 궁극에는 대한민국 헌법이 놓여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차이만 보았다면 이 토론회를 통해 ‘보다 큰 공통성 안의 차이’에 주목하게 됐다. 이를 이번 천주교 내부 갈등에 대입하면, 공통분모에는 대한민국과 신이 놓여있는 셈인가.

 청와대 모임엔 지난 9개월간 토론회 참가자 모두가 초청받았다. 이 자리에서 보수 성향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보수-진보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토론하기는 처음인데, 인격을 존중하며 토론하니 달랐다”는 감회를 전했다. 진보 성향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보수-진보의 비전 경쟁이었고, 보수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발언은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이번 토론회의 의의는 진보와 좌파를 구분하는 것이었는데, 진보는 대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지만, 좌파는 자기 주장에 갇혀 있어 소통·토론이 잘 안 된다”고 했다. 이 논리는 우파 보수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결국 합리적인 진보와 보수가 우리 사회 공동의 선을 찾아나가는 연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겠다.

 ‘사회통합 컨센서스 2010’은 최종 결론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제안일 뿐이다. 천주교 사제들이 한 차원 더 높은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