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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는 겸손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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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3096명. 이번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 배지를 달게 될 수험생(정원 내) 숫자다. 전체 70만 명 중 0.4%에 불과하다. 서울대 수시합격자가 발표되자 곳곳에 현수막이 나붙고 있다. 서울대 합격은 예나 지금이나 지역과 학부모와 수험생의 로망인 것이다. 전국의 최고 인재를 거둬가는 서울대는 그만큼의 경쟁력이 있을까. 2012년부터 ‘국립 서울대’가 ‘법인 서울대’로 바뀌면 공무원 냄새가 좀 가실까. 세계 명문 대학과 당당히 어깨를 견줄 수 있을까.

 좀 미덥지가 않다. 사실 서울대는 대한민국 경쟁력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오연천 총장도 8월 취임사에서 “대학이 미래의 유일한 등불이자 희망”이라며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 거듭나자”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대학이, 그것도 서울대의 경쟁력이 없으면 국가의 경쟁력도 그만큼 뒤처질 수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내홍이다. 법인화를 둘러싸고 교수들 편이 갈리고, 직원들은 이해득실만 따진다. 15년을 다져온 일인데 집안화합이 안 되는 것이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서울대 법인화는 어찌 보면 일종의 특혜다. 막대한 국민 돈을 대주면서도 인사·예산·조직 운영을 자율에 맡겼기 때문이다. 책무성에 대한 감시 장치도 느슨하다. 믿을 테니 알아서 잘하라는 메시지다. 서울대는 블랙홀이다. 돈·연구·인재를 쪽쪽 빨아들인다. 소유 땅만 1억9250만㎡다. 전 국토의 0.2%, 서울시 면적의 33%나 된다. 법인화에 따라 얼만큼 무상양도될지 모르지만 상당한 규모일 게다. 교수 연구비 수탁액도 연간 4200억원이다. 1인당 4억원이 넘는 곳(공대)도 있다. 다른 대학 교수들이 부러워할 만하다. 서울대 프리미엄이 간단찮다는 얘기다. 직원들은 또 어떤가. 목에 깁스를 한 것 같다. 관료주의가 팽배하다. 사립대 직원들과는 영 딴판이다.

 서울대가 글로벌 명문대로 도약하려면 겸손해져야 한다. 2%만 노력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고객 마인드가 필요하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대학은 당연히 국민을 고객으로 모셔야 한다. 사소한 예를 들자. 9~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정시 대학박람회가 열렸다. 전국 88개 대학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초조함을 덜어주기 위해 참여했다. 서울대는 빠졌다. 정시 정보 수요가 많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또 한 가지. 예정된 일인데도 오후 네다섯 시를 넘겨 보도 자료를 낸다. 쓸 테면 쓰고 말 테면 말라는 식이다. 사립대는 한 줄이라도 언론에 나오게 하려고 백방으로 뛴다. 견줘 보면 서울대는 거져먹는다. 최고라는 자만심이 겸양지덕(謙讓之德)의 힘을 우습게 본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오연천 총장의 열린 마음이다. 그는 “소통하는 경청의 리더십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근엄한 총장 이미지를 털겠다며 청소 아주머니들까지 챙긴다고 한다. 최고의 인재를 거둬 최고로 키우지 못한다면 서울대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 시험대가 법인화다. 첫 걸음은 공무원 냄새 추방과 겸손으로 떼야 한다.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