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한국 칭찬, 듣기는 좋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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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상당수 한국인의 정치감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포함해,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바라보는 일본 언론의 눈길에는 한국 대통령들의 리더십에 대한 부러움이 엿보인다. 협상을 최종 타결시킨 이명박 정부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최종 타결은 이명박 정부가 했지만 농업시장 개방 등에 정치적 결단을 내려 서명에 이른 것은 노무현 정권 시대였다”(산케이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농가는 물론 노조 등 자기 지지층의 비판을 뒤집어쓰면서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니혼게이자이신문)라는 토를 단 해설이 많다. 때로는 나무만 보기보다 바깥에서 숲 전체를 보는 것이 정확한 법이다. 우리 야당도 귀담아 들어주었으면 한다.

 일본 언론 논조의 배경에는 연립할 파트너 정당을 구하지 못해 6개월째 방황하다 다시 사민당 쪽을 기웃거리는 간 나오토 총리 정권의 유약한 리더십에 대한 조야(朝野)의 원망과 위기감이 깔려 있다. ‘제3의 개국’을 한다며 환태평양파트너십협정(TPP) 참가를 공언했던 일본은 나흘 전 열린 TPP 추진 9개국 회의에 ‘방청’이라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농수산족(族) 국회의원들의 집단 압력에 밀려 TPP 참가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다 당한 수모였다. 일본에서 농업 등 1차산업의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1.5%, 농민 인구는 유권자의 2.5%인 260만 명이다. 이들을 의식한 정치권의 압력 때문에 국민의 52%가 찬성하는 TPP 참가(반대는 17%, 니혼게이자이신문 여론조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일본이 세계 주류 무대에서 고립된다는 ‘일본의 갈라파고스화(化)’ 우려는 점차 깊어지고 있다.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시샘 섞인 칭찬은 그리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일본이 특히 열을 내는 정도다.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충돌사건에서 겪은 굴욕감, 한·미 FTA, 게다가 아시안게임에서마저 한국에 한참 처진 3위를 기록했으니 정치·경제에서 스포츠까지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낄 만하다. 지난달 한 신문 칼럼은 “언제부터 일본이 한국의 뒤를 쫓아가는 나라가 돼 버렸는가.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되었다는 말인가”(11월10일자 마이니치신문)라는 탄식으로 끝맺기도 했다.

 나라가 막다른 골목에 부닥쳤다고 느낄 때 어느 나라든 누군가 경고음을 울리는 법이다. 지도자라면 자신이 앞장서서 경고음을 내든가, 남이 발령한 경보를 재빨리 간파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며칠 전 오바마 미 대통령이 “미국이 50년 만에 또다른 스푸트니크 시기로 되돌아왔다”고 말한 것도 일종의 경보 발령이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후 절치부심 끝에 소련보다 먼저 달 착륙에 성공했듯이, 비슷한 위기인 지금 교육·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오바마가 입을 열 때마다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한다 해서 그저 헤헤 웃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본에서도 80년대 후반부터 막다른 골목에 이른 국가 진로를 놓고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됐던 이론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1923~2004) 같은 이는 이대로 가면 일본은 망한다며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일본·중국·한반도·대만·오키나와가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공동체’ 결성에 나서자고 역설하기도 했다(모리시마 미치오, 『일본은 왜 몰락하는가』, 이와나미서점).

 남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경고음이 필요 없는 상황일까. 경보 대신 국회에서 유리창 부서지는 소리, 망치 소리만 나는 지금이 과연 정상일까. 연평도 포성 이상의 경고음이 또 필요한가. 연말 탓인지 심란함이 더해 간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