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의 서울 트위터] 수능 성적표는 차표 한 장일 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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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머릿속에 영사기를 심어둔 것처럼 생생한 날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말이죠.

 제겐 수능 성적표를 받던 날이 그랬습니다. 시험을 치른 후 잠시 해방감을 맛보았던 친구들은 그날, 너나없이 부둥켜 안고 울었죠. 1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살인적인 공부량에 시달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늘 떡져 있던 머리카락조차 정겹던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울었습니다.

 전년도에 비해 지나치게 어려웠다는 말도 위로가 안 됐습니다.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와 ‘대박’ 터진 아이들도 눈치가 보여 좋은 티를 못 냈지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그날만큼은 정말이지 ‘성적’ 순이었습니다.

  8일, 성적표를 받아든 고3 학생들이 우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그날의 제 모습이 겹쳐지면서 짠하더군요. 이번 수능이 무척 어려웠다고 하니 눈물의 농도는 더 진할 겁니다. 수리 ‘가’ 만점자는 역대 최저라고 하네요. 교육담당 기자가 말해주길 “수리영역에서 한 번도 2등급 이하를 받아본 적 없는 학생이 이번엔 3등급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트위터에도 수험생을 격려하는 말들이 올라옵니다.

 ‘그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게 많으니 일단 놀아라’ ‘울 시간에 놀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지 않게 해라’ ‘성적이 어떻든 여행을 떠나라’ 등…. ‘세상이 너를 대학이나 돈 같은 천박한 논리로 재단할지라도 우리는 촌스럽게 그러지 말자’는 말이 눈에 띕니다. 성적표를 받았던 날 “그게 12년치냐”라는 면박을 들었다는 분의 트윗에는 웃음도 나왔지요(우리 그러지는 맙시다). 앞으로도 논술이며 면접이 줄줄이 남아 있겠지요. 다시 한번 도전을 결정한 이들도, 일찌감치 합격한 이들도 있을 겁니다. 지금 개개인의 상황이 어떻든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을 트위터에서 찾았습니다.

 “수능 성적표는 인생이란 여행을 떠나려고 터미널에서 구입한 차표 한 장에 불과할 뿐이야.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고속버스표나 완행버스표를 살 수밖에 없지만 차표는 결코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란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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