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泥田鬪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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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말 그대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를 뜻한다. 여기에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이라는 의미로 확대 발전했다. 이 말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우리나라 8도(道) 사람의 특징을 4글자로 표현한 데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1392년) 직후 정도전에게 각 지역 사람들의 품성을 평가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그의 ‘4자 품평’은 이랬다. 경기도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다’ 하여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 했고, 충청도 사람들은 ‘맑은 바람, 밝은 달과 같은 품성’이라는 뜻의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고 표현했다. 전라도 사람들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와 같은 풍전세류(風前細柳)의 품성을 지녔다고 했다.

 정도전은 또 경상도 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로 비유했고,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로 표현했다. 황해도 사람들은 봄 물결에 던지는 돌이라는 뜻의 춘파투석(春波投石)에 비유했고, 평안도 사람들은 산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 같다(山林猛虎)고 평가했다.

 이제 남은 것은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 정도전은 잠시 머뭇거린다. ‘얼른 말하라’는 태조의 재촉에 정도전이 어렵게 말을 꺼내니, 그것이 곧 이전투구(泥田鬪狗)였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강인하다는 뜻이다. 자신의 고향 사람들을 개에 비유했으니 이성계가 기분 좋을 리 없다. 그가 언짢은 표정을 짓자 정도전은 ‘돌밭을 가는 소(石田耕牛)’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갖고 있다고 해 태조의 기분을 누그러뜨렸다고 한다.

 이전투구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성어이기에 중국어에는 없다. 대신 ‘와리투(窩裏鬪)’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이는 ‘가축이나 짐승이 자기 우리 속에서 서로 싸운다’는 것으로 이전투구와 비슷하게 쓰인다. 내홍(內訌)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 집단 소속 구성원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을 표현한 말이다.

 정치권이 또 충돌했다. 여지없이 ‘이전투구’라는 말이 나온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선량(選良)들은 국회에 들어가기만 하면 왜 함경도 사람 품성으로 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의도가 진흙탕도 아닐 텐데 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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