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농산물 분야 상당한 진전” … 자동차는 양보한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의 한 호텔에서 한·미 FTA 추가 협상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컬럼비아=연합뉴스]

곡절 많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이 결국 타결됐다. 지난달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선 합의에 실패했지만,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추가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한·미 안보동맹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됐고, 협상팀은 이를 배경으로 타결의 타이밍을 잡은 셈이다.

 미국에 온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사흘째인 2일(현지시간) 저녁 현지 기자들에게 협상에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통상관료가 이런 식으로 협상의 진척 상황을 알려 주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마지막 남은 사안 하나를 합의하지 못해 협상이 깨지는 경우가 숱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으로 가는 협상팀이 이번 기회에 가능하면 FTA를 마무리하라는 넓은 의미의 권한 위임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미 양측의 합의 내용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양측이 ‘이익의 균형점’을 다시 찾았는지는 시간을 두고 판단할 문제다. 다만 미국의 불만으로 시작된 협상인 만큼 이를 재봉합하는 과정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자동차의 관세 철폐 기한 연장 문제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미국 측은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수입관세 2.5%를 FTA 발효 후 3년 내 철폐하기로 한 기존 합의에서 철폐 시한을 몇 년 더 연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 협상에선 이에 대한 돌파구로 미국의 자동차 관세 철폐 유예 요구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농산물을 비롯한 여타 분야에서 자동차 관세 철폐 유예에 상응하는 미국 측의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김 본부장은 협상을 마무리한 뒤 “농산물 분야에서 진전이 있었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추가협상에 쇠고기 문제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촛불 사태’에 덴 한국 정부로서는 어떤 식으로도 쇠고기 문제로 다시 논란에 휩싸이는 상황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쇠고기 문제는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적인 사안이라는 우리 측 설명을 미국이 받아들인 것이다.

 정부는 5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협상 내용을 추인한 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야당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국회 비준을 앞두고 정치권에 대한 설득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그러나 야당은 그동안 김 본부장이 “점(.)이든 콤마(,)든 협정문에 다시 찍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점을 들어 책임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기존 협정문을 수정하지 않고 별도의 부속협정서를 만드는 우회로를 택하더라도 협상 내용이 수정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편 김 본부장은 미국의 요구사항이 협상 초기에 매우 높았다는 점을 거론했다. 그는 사흘째 협상을 마치고 “(미국 요구 수위를) 처음보다 많이 낮춰 놓았다. 한참 지나 나중에 (내용을) 다 밝히면 뒤집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경호·권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