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반도 사태 중재 나선 중국의 역할 주목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한반도는 지금 전쟁과 평화의 기로(岐路)에 서 있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하고, 이에 남한이 단호하게 대응할 경우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떠다니는 군사기지’인 미국의 핵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이 어제부터 서해에서 최고 수준의 한·미 합동훈련에 들어갔다. 연평도에서는 이틀째 북한군의 포성이 관측됐다. 이로 인해 어제 한때 연평도 잔류 주민에 대해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세계가 극도의 긴장감 속에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격 방한한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어제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했다. 다이빙궈는 중국 외교의 최고 실무책임자다. 중국이 뒤늦게 한반도 사태에 대한 중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서도 이번 사태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천암함 사태와 달리 이번 연평도 사태는 한국 영토에 대한 북한의 명백한 군사공격이다. 민간인 사상자까지 발생했다. 방치했다가 상황이 악화돼 한반도의 안정이 깨질 경우 중국도 심각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절박한 상황 인식 아래 중국도 중재에 나섰을 것으로 본다.

 현 사태는 직접적으로는 남북한의 문제지만 미·중 관계의 큰 틀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라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가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터졌다. 천안함 사태 때만 해도 미국은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항모의 서해 전개를 접어야 했지만 이번은 다르다. 북한의 선을 넘은 도발이 미 항모를 서해로 불러들이는 초청장이 됐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의 서해 연안 일대가 미 항모의 감시·정찰·작전권에 노출되는 안보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중국도 어쩔 수 없는 처지다. 한·미 동맹에 기초한 미국의 강력한 대응이 중국을 중재에 나서도록 유도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어제 긴급 6자회담 개최를 공식 제안했다.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다이빙궈도 같은 제안을 했지만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게 이 대통령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현 상황에서 6자회담을 여는 것은 북한의 무력 도발에 굴복하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정부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지금 정부는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선다면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원한다면 당장 중국이 해야 할 일은 6자회담 날짜를 잡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다.

 중국에 북한은 양날의 칼이다. 미국을 견제하는 유용한 카드일 수 있지만 무모하고 폭압적인 정권의 성격 자체가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血盟)’이라는 냉전적·구(舊)시대적 인식에 사로잡혀 북한 편을 들다가는 한국과 미국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서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중국에 뜨거운 감자다. 성급하게 삼키다가는 식도를 다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호호 불어 일단 열기를 식힌 다음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추가 도발은 죽음에 이르는 ‘독배(毒盃)’임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석유와 식량 등 전략물자의 대북 보급로를 차단하는 극단적 조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싸고도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한국은 미국 쪽으로 기울게 돼 있다. 북·중과 한·미의 신(新)냉전적 대결 구도가 동북아에 재현되고 있는 데는 이명박 정부의 미국 편향적 외교 탓도 있지만 중국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이 건전한 상식과 국제적 규범에 맞게 북한을 대하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추구했더라면 오늘의 동북아 정세가 이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 편을 드는 한 한국으로서는 미국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정쩡한 양다리 걸치기로 위기만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한반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공정하고 책임 있는 중재자 역할을 중국에 촉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