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속 보이는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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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

4개월 만이었다.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한 강용석 의원의 입에서 “사과”란 단어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7월 20일 본지가 성희롱 발언을 첫 보도한 뒤 강 의원은 지금껏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기에 바빴다. 그런 그가 4개월이란 긴 시간이 흐른 23일 기자들을 자신의 국회의원 회관으로 불렀다. 그러곤 “사과”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 사이에선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탄식이 나왔다. 이유는 이렇다.

 기자간담회가 시작되자 강 의원은 준비된 발언을 했다. “4개월간 자숙의 시간도 갖고 많은 생각도 하면서 깨달음과 가르침을 얻었다. 혼나는 것이 많이 아팠지만 ‘그렇게 바라보는 게 많은 국민의 생각이구나’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사과 발언은 이렇게 이어졌다. “경위가 어떻게 됐든 제 문제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많은 분께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국민 여러분께도 많은 심려를 끼친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준비된 발언 속에서 그는 피해자에 대한 언급을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갔다. 더구나 “경위가 어떻게 됐든”이란 대목에서 보듯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압축하자면 ‘그냥 잘못했다’는 거였다. 뿐만이 아니다. 강 의원은 기자간담회 사실을 통보하면서 성희롱 사실을 보도한 본지 기자들만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가 간담회를 연 진짜 목적은 준비된 발언 말미에 나왔다.

 “국회에 나오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를 뽑아준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의 생각을 정확히 반영해 말하겠다. 일단 국회를 열심히 나오겠다.”

 간담회가 끝난 뒤 그는 곧바로 국회 지식경제위 회의에 참석했다. 간담회의 목적이 사과보다는 정치활동 재개에 있었던 셈이다.

 결국 강 의원은 이날 세 번이나 고개를 숙였지만 진정성이 느껴지기엔 한참 모자랐다. ‘4개월간의 자숙과 생각’이 가져다 준 결과가 겨우 이 정도라면 강 의원은 남은 1년4개월여의 임기 동안 의정활동보다 자숙과 반성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다.

이가영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