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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두 얼굴: G20과 국가인권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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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정연정
배재대 교수·공공행정학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전 세계의 시선이 G20 정상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에 모아졌고, 이명박 대통령도 무게감 있는 국제회의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우리 국민의 수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공식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G20의 자신감 이면에선 국격의 수준을 무엇보다도 잘 반영하고 있는 ‘인권’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재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현직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인권위 내부 위원 61명이 집단으로 사퇴하는가 하면, 이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 모임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더욱더 염려스러운 바는 현직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인권위 내부 위원들과 직원들을 “외부 세력의 음모” “진보 세력의 불순한 의도”가 있는 대상으로 적대화하는 표현들이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 내부 구성원 간의 입장 차이, 이른바 이견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회나 조직이 상호 간의 이견을 해묵은 이념적 대립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특정한 사회적 갈등을 놓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만 몰아가는 것은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원시적 사회에서나 가능한 문제 해법일 것이다. 더군다나 G20 의장국인 한국의 ‘인권’ 보호를 위해 설립된 국가기구의 내부 운영에 대한 이견을 ‘특정한 세력’의 의도성 있는 행동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G20 의장국으로 우리가 발휘해야 했던 능력이 ‘조정’과 타협’의 기술이었다면, 왜 현실 사회 문제는 이러한 기술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일까 반문할 수밖에 없다.

 내부 위원들이 제시하고 나선 국가인권위의 현재적 문제는 인권위의 독립성 강화, 인권 현안에 대한 책임 있는 대응, 내부 위원회 운영의 정상화 등 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위해 한번은 되물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시간과 절차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를 되묻게 된다.

이 같은 되물음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적절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즉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내부 위원들 측도, 그리고 사퇴할 수 없다고 밝힌 현직 위원장도, 또 내부 위원들의 행동을 불순하다고 바라보고 있는 사회단체들도 ‘국가인권위원회’의 미래적 발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미래적 발전 대안이야말로 현재 풀리지 않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둘러싼 갈등을 풀기 위한 실마리인 셈이다. 국민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가라는 차원에서 현재의 갈등을 발전의 과제로 되돌려 놓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자는 현직 위원장이다. 사퇴가 대안이 아니라면,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직 위원장은 인권위 문제를 이렇게 풀어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미 없는 색깔 논쟁식의 대립 구도는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인권 문제에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이념적 차이가 아닌 정책적 조정으로 추구되어야 하는 보편적 가치와 같은 것이 바로 인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격이 G20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니 이를 능가하기 위해선 해묵은 이념적 대립구도를 최소한 극복해야 한다. 국가인권위가 갖고 있는 원래의 의미, 그리고 이러한 기구에 대해 과거 다른 나라들이 보여주었던 관심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흔치 않은 인권보호기구를 스스로 공식화했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인권위의 운영과 지속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G20의 국가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과 동일한 무게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구 자체의 존치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구를 발전시켜 가기 위한 정부와 역할자들의 전향적인 노력이야말로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보다는 한국 사회의 향후 발전과정에서 ‘인권위’가 찾아가는 대화와 타협, 조정의 질서가 우리 국격을 반영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공공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