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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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호 18면

“아니 선생님, 왜 이런 걸 제게 주십니까?”
J씨는 필자가 치료용 바이브레이터를 건네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J씨가 친구로부터 들은 경험담 때문이었다. 우연히 선물받은 바이브레이터를 친구의 아내가 사용해 보고는 그날 이후로 남편과의 잠자리는 등한시하고 바이브레이터만 사용하려 해 참다 못해 화가 난 그 친구는 결국 바이브레이터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경험들로 인해 많은 남성이 여성이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도 바이브레이터 사용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면 이에 지나치게 탐닉하게 돼 남성과의 관계에서 만족도가 떨어질까 우려하기도 한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바이브레이터에 탐닉하게 되는 여성들을 보면 보통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전희가 거의 없거나 시간이 아주 짧고 오르가슴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즉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상태에서는 바이브레이터 사용을 실제 성행위보다 더 선호하게 된다.

성적 자극이나 성생활에서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왜 여성이 바이브레이터만 선호하고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는지 그 이유에 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이 이전에 전희가 거의 없었던 데 기인한다. 남성들은 성행위의 핵심은 삽입 이후의 거칠고 강한 피스톤 운동이라 생각하고 이것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오히려 클리토리스와 같은 성감대에 대한 자극에 더 흥분하고 잘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에게서 클리토리스 자극은 성적 흥분이나 오르가슴에 이르는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진료실을 찾는 많은 환자가 클리토리스 오르가슴과 질 오르가슴의 차이에 대해 묻곤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삽입을 통한 질 오르가슴이 바람직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를 쉽게 느낄 수 있는지 문의하기도 한다. 질 오르가슴과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은 과거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여성의 오르가슴을 분류했던 방법이다. 그는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여성에게서 보이는 것이고 질 오르가슴이 더 성숙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100년 전 과거의 개념으로, 이미 50년 전 성의학자들이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질 오르가슴과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은 그 메커니즘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현재는 프로이트의 질 오르가슴 이론은 확실한 실험이나 근거 없이 오로지 이론에 의해 여성의 성생리를 잘못 이해한 대표적인 경우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남성의 성기만이 여성을 제대로 만족시켜 줄 수 있다는 남성 우월적인 시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되돌려 말하자면 바이브레이터는 성생활에서 필수 도구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독이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여성은 클리토리스에서 빠르고 부드러운 진동 자극에 쉽게 흥분한다. 남성이 이러한 자극을 주는 것도 좋지만, 신체의 일부로 빠르고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것은 상당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진동기는 여성용 도구라는 생각보다는, 사실은 남성이 손쉽게 여성을 흥분시키기 위한 남성의 편의 도구라고 보는 게 옳다. 부디 남성들이 J씨와 같은 괜한 오해에 바이브레이터를 싫어하고 멀리할 것이 아니라 아내를 그만큼 잘 자극하고 흥분시켜 주면 오히려 두 사람의 성생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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