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빼먹기’의 즐거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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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호 14면

대기업 부장 이씨는 등산과 골프 애호가다. 대개 등산을 좋아하면 골프를 등한시하게 되고, 골프에 빠지게 되면 등산을 멀리하게 마련인데 이 부장은 바쁜 시간을 쪼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경우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 부장은 등산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등산과 골프에 할애하는 시간의 비율이 6대 4쯤 된다.

정제원의 골프 비타민 <136>

“등산을 가면 참 좋아요. 일주일에 사나흘씩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버틸 수 있는 건 등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요일 날은 반드시 산에 오르는 거죠. 등산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쓰러졌을지도 몰라요.”

등산 애호가인 이 부장은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골프도 즐긴다.
“친구들과 적은 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치는 재미가 쏠쏠하죠. 그런데 골프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흠이에요. 비용도 만만찮게 들고. 골프 한 번 나가려면 족히 30만원은 들잖아요. 그래서 골프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지요.”

그런데 이 부장은 최근 등산과 골프를 하루에 즐길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을 개발했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비용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비법이라는 것이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등산과 골프를 하루에 즐긴다고 해서 ‘등골 빼먹기’라고 부르죠. 등산과 골프를 어떻게 한꺼번에 하냐고요.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이 부장은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친구 두세 명과 함께 집 근처 산에 오른다. 북한산도 좋고, 관악산도 좋다. 출발시간은 오전 8시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굳이 바쁘게 걷지 않아도 된다. 쉬엄쉬엄 산에 다녀와도 오후 1시쯤이면 내려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부장 일행은 그 다음엔 스크린 골프장으로 향한다.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 그렇지만 (스크린) 골프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른 준비물이 필요 없어요. 스크린 골프장엔 클럽과 장갑, 골프화까지 구비돼 있잖아요. 그런데 나는 굳이 골프화로 갈아 신을 필요를 못 느껴요. 등산화를 신고 샷을 하면 공이 더 잘 맞더라고요. 더구나 따로 스트레칭을 할 필요도 없어요. 등산을 하면서 몸이 충분히 풀린 덕분이지 스코어가 더 잘 나오는 편이라니까요.”

등산화를 신고 샷을 하는 게 골프 에티켓에 어긋나는 건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접어두자. 이 부장은 ‘등골 빼먹기’야말로 바쁜 현대인에게 적합한 운동 형태라고 주장한다. 돈과 시간이 모두 절약된다는 것이다.

등산을 마치고 오후 1~2시쯤 스크린 골프를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오후 5시쯤엔 ‘등골 빼먹기’를 마칠 수 있다. 비용도 3만~4만원이면 충분하다. 등산이야 따로 돈 들일 게 없고, 스크린 골프장 이용료와 식사비 정도만 부담하면 끝이다. 이 부장의 ‘등골 빼먹기’ 예찬은 계속된다.
“‘등골 빼먹기’를 하면 해질 무렵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산행을 통해 건강을 다지고, 저렴한 비용으로 골프를 즐기는 데다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으니 이런 게 바로 일석삼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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