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친서민 말만 말고 상조시장부터 살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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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례를 치를 때 보통 1000만원이 넘는 목돈이 드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서민 가계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수요를 파고들며 지난 10여 년간 국내 상조업체들은 10배 이상 늘어났다. 시장 규모는 2조원대로 커졌다. 서민들로선 매달 수만원씩을 내고 상(喪)을 당했을 때 약정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악덕업주들이다. 최대 상조업체인 현대종합상조와 보람상조·한라상조 대표들이 미리 받은 선수금을 빼돌렸다가 줄줄이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 조사에서 이들은 구멍 난 현금을 메우기 위해 피라미드식 회원 유치의 편법을 동원하거나, 고객 돈의 절반을 다른 고객을 끌어들이는 광고비로 지출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었다. 결국 수많은 서민만 피해를 보게 됐다.

 요즘 상조업계는 ‘초상집 신세’다. 영세하고, 낙후되고, 비리가 만연한 곳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으로 상조업을 등록제로 전환하고 선수금의 절반을 은행에 넣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고질적 병폐인 선수금 빼돌리기를 막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후 상조업계는 영세업체들이 회원을 양도하고 합병하는 식의 구조조정 회오리가 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 상조시장이 정상화될지는 의문이다.

 우리의 낙후된 장례문화는 일부 대형 병원들이 장례식장을 현대화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게 사실이다. 상조시장 선진화에도 이런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상조시장은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회보험의 하나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투명성·신뢰성을 높이고 고(高)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상조업계를 과감하게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 업체 규모를 키우는 것과 함께 믿고 맡길 수 있는 준(準) 사회적 기관들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겨야 할 것이다. 소비자인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감시·감독도 강화돼야 한다. 따지고 보면 상조시장 정상화만큼 절실한 친(親)서민 정책도 없다. 마지막 떠나는 길이 어수선하게 방치되고 비리로 얼룩진다면, 이는 나라의 품격과 인간의 품위에 관계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