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위해 기업 희생양 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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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내릴 시정조치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활발한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제재에 주력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들은 "마치 경찰이 올해 '범죄자를 몇 명 구속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공정위가 16일 업무보고에서 제재 목표를 밝힌 것은 각종 불공정행위와 신문지국에 대한 조사를 포함해 모두 10개 분야다. 특히 공정위가 7일 시작한 신문지국 조사의 경우 목표 시정조치 건수가 240건으로 가장 많았다. 공정위는 올해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부당한 거래 관계를 적발해 10건의 시정조치를 내리고, 시장경쟁을 제한하는 카르텔 분야에서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39건의 시정조치를 내리겠다고 명시했다. 또 재벌그룹을 대상으로 한 부당내부거래 조사에서는 조사업체당 시정조치 건수를 0.85건으로 하겠다는 수치도 제시했다. 공기업의 불공정행위의 시정조치 목표 건수도 10건이었다. 이 밖에 ▶표시광고 분야 170건▶불공정약관 분야 120건▶전자상거래 분야 40건▶가맹사업 관련 10건 등의 제재 목표도 정했다.

시정조치는 아니지만 담합 행위 등을 차단해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3417억원의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독과점 등을 형성하는 기업결합을 차단해 최근 4년 평균보다 12% 늘어난 1200억원 정도의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겠다는 금액 목표도 제시됐다.

공정위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에게 "준사법기관으로서 신뢰도를 높이고 고객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해 사건처리 절차와 심리 절차를 개선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재계 등에서는 제재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처벌권이 있는 준사법기관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한다. 또 현재 진행 중이거나 시작하지도 않은 조사에 제재 목표를 정하는 것은 공정위 직원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대기업의 임원은 "임의로 제재 건수를 조정하는 것은 정책 목표를 위해 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허선 경쟁국장은 "목표치는 우리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 공정 경쟁이 정착돼 시정조치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다른 관계자는 "이날 보고 자료에도 목표달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법집행의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며 "원래 의도와는 달리 확대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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