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 한국인은 지금] 전문가 기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 김상욱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발전이 일에 대한 국민의식에 의해 좌우된다고 역설했다. 일에 대한 의식은 개인마다 국가마다 큰 차이를 보여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식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다분히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의식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을 통해 얻는 소득에 대해서도 자신의 소득 혹은 사회 전체의 소득분배가 공정하다는 긍정적.낙관적 인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부정적.비관적 인식 또한 존재한다.

일과 소득은 이른바 '먹고사는' 문제로서의 경제의 핵심적 내용을 구성한다.

한국종합사회조사의 결과를 보면 한국 근로자들은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이나 소속 직장에 대해서는 커다란 애착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정작 근로의식(일하는 것 그 자체를 귀중하고 숭고한 활동으로 생각하는 태도)은 단연코 세계 수위를 점한다. 이는 한국인이 일 그 자체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부딪히는 현실(부족한 일자리, 불안한 고용, 과중한 업무, 제한된 재취업 기회 등)을 대단히 비관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양면적인 반응행태는 이상적 가치와 현실적 여건 사이의 극명한 괴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이러한 괴리는 각종 근로조건들(고용안정, 승진, 자율성 등)을 중시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를 누리지 못한다는 인식이 다른 나라 근로자들에 비해 훨씬 더 많다는 조사 결과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객관적 수치)과 소득 불공정성(주관적 체감도)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다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섣부른 낙관만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불공정성이 지속적인 상승일로에 있다는 조사 결과는 우울한 전망을 낳게 한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의외로 단순 명료하다. 우리 사회의 '파이'의 크기를 키움과 더불어 파이의 분할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천에 옮길 구체적 방법론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것이 사실인데,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폭넓게 수렴하려는 주도면밀한 사회적 노력과 합의가 요구된다. 파이를 둘러싼 지루하고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자그마한 노력과 합의나마 실행에 옮기려는 실천적 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