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적자에 흔들… 고이즈미 입에 출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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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0일은 외환 딜러들에게 공포의 하루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날보다 2원 떨어진 달러당 999원으로 출발한 원화 환율은 오전 11시15분쯤 989원까지 급락했다. 그러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11시50분쯤 달러당 1008원까지 수직 상승했다가 이후 1000원을 놓고 시종 공방을 벌였다. 결국 전날보다 0.7원 하락한 달러당 1000.3원으로 마감해 가까스로 1000원선을 지켰지만, 하루에 달러당 19원이나 출렁거린 것이다.

장중 한때 달러당 1000원선이 무너진 것은 지난달 22일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다. 지난달 원화 환율 하락 요인은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의 운용을 다변화하겠다고 밝힌 '한은 쇼크'였다. 이번엔 미국 무역수지 적자라는 구조적인 요인에 '일본 쇼크'가 겹쳤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일본도 외환보유액의 운용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일본 쇼크로 출렁=이날 환율은 미국의 1월 무역수지 적자 폭이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소식 때문에 하락세로 출발했다.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 당 103.66엔까지 떨어졌다.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달러당 1000원이 무너진 것도 같은 요인 때문이었다.

여기에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이 겹치면서 시장의 충격이 컸다.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엔화는 오전 11시쯤 일시적으로 103.84엔까지, 유로당 달러는 1.3455달러까지 떨어졌다. 11시쯤 국내시장에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원화 환율은 11시15분쯤 7년4개월여 만에 최저치인 989원까지 밀렸다.

◆정부의 다급한 개입=재정경제부 진동수 국제업무정책관은 오전 11시15분쯤 예고 없이 기자실로 내려왔다. 그는 "외환시장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운을 뗀 뒤 "한은과 적극 협력해 재경부도 적극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진 정책관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사실상 시장 개입을 선언했다. 이어 "지금은 환율 방어를 위한 여유자금이 있고 한은도 노력할 것"이라며 시장에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박승 한은 총재도 11시40분쯤 기자간담회에서 "투기세력이 시장의 정상적인 흐름을 교란시킨다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스무딩 오퍼레이션(달러화 매수를 통한 시장 개입)을 즉각 개시하겠다"고 거들었다.

◆당분간 지속될 환율 하락세=정부의 적극 개입으로 환율 하락세가 일단 진정됐지만, 환율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금요일 발표될 미국의 1월 무역적자가 사상 두 번째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일본의 경기 회복세는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자본이 적자가 확대되는 미국 달러보다 일본 엔화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에 엔화가 달러당 최저 95엔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투기세력들의 달러화 매도 공세도 원화와 엔화 환율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동호.이승녕.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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