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이산가족 상봉 확대 위한 식량·비료 지원 검토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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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6·25 전쟁 당시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2만8232명이다. 이 중 4만4940명은 이미 사망했고, 생존자 8만3292명 가운데 70대 이상이 77%에 달한다. 1985년 9월 92명이 평양을 방문해 가족을 만난 이후 2000년부터 현재와 같은 방식의 상봉행사가 지난해까지 17차례 열렸다. 이 행사를 통해 북녘의 피붙이를 만난 사람들은 1782명으로 신청자의 1.38%에 불과한 숫자다. 그나마 남북관계 경색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은 상봉행사가 거의 열리지 못하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기다려야 하는 상봉 신청자들로선 가슴이 바싹 바싹 타들어 간다.

 이들의 통한(痛恨)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대한적십자사는 엊그제 개성에서 열린 북한과의 회담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매달 100명씩의 상봉행사 정례화, 상봉 경험이 있는 이산가족들의 재상봉, 매달 5000명씩의 생사·주소 확인, 80세 이상 고령자의 고향 방문,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사확인 등이 그것이다. 매달 100명 상봉 방식이 성사된다고 해도 1년에 고작 1200명이다. 앞으로 20년을 계속해도 불과 2만4000명만이 뜻을 이룰 수 있다. 그게 성사돼도 6만 명 가까운 나머지 이산가족들은 북에 두고 온 피붙이들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애끓는 그리움을 안고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괘씸한’ 수준이다. 상봉 횟수를 1년에 3~4차례로 하고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사업을 병행하자고 수정 제안했다. 그나마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을 지원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핵개발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사살, 천안함 사건 등 남북관계 순항(順航)을 가로막는 온갖 악행을 저지른 탓에 중단된 대북지원을 이산가족 상봉을 내세워 재개해 달라는 뜻이다.

 저들의 소행을 생각하면 당장 판을 깨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60년 가까이 피붙이들을 그리워하며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돌아보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묘안(妙案)이 없을까. 지난해 정부는 900여 명에 달하는 납북자 및 국군포로의 송환을 위해 과거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 석방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한 프라이카우프(Freikauf, 자유 사들이기) 정책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이 방법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쓰는 것은 어떤가. 상봉이 성사된 인원수에 비례해 일정량의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겠다고 북측에 제안하는 것이다.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을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방식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또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해 최소한의 유감표명조차 없는 북한을 상대로 거래하는 것이 내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생(餘生)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그들의 피맺힌 한(恨)을 달래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대북정책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상봉을 늘리기 위한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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