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한국 하면 떠올릴 인물 국가 전략으로 키워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가운데 에비에이터와 레이를 관람했다. 두 영화 모두 눈에 띄는 특징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인을 소재로 한 전기영화라는 점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여러 형태로 구분된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건축물도 있고, 이집트 피라미드와 같은 역사물도 있다. 브라질 축구와 같은 스포츠 종목도 있고, 스위스의 초콜릿 같은 음식도 있다.

물론 한 가지 상징물이 한 나라의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한 나라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이런 상징물에 '인물'이라는 개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스타나 영웅 만들기에 적극적이고 이런 국제인사들은 세계무대에서 자국에 부지불식간에 크고 작은 지원과 도움을 주며 자국의 국제이미지 개선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유치한 것이나 말레이시아가 최근 동남아에서 가장 각광받는 외국인 직접투자 대상국이자 관광국으로 부상한 것도 각각 넬슨 만델라와 마하티르 모하마드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자국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들은 현직도 아닌 전직 국가원수임에도 불구하고, 현직 남아공이나 말레이시아의 국가원수는 누구인지 몰라도 이들의 이름은 많은 사람이 기억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업무상 외국인들과 만나다 보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의 투자환경이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한국을 알아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 나라의 이미지는 그래서 중요하고, 그 때문에 세계 각국은 상징물들을 선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건축물이나 역사적인 상징물 개발에도 우리나라가 갈 길이 멀지만 '한국 하면 떠오르는 국제적인 인물'에 대한 대답으로 줄 수 있는 이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안타깝다.

비디오아트 선구자 또는 줄기세포 연구 권위자처럼 수식어가 있어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정치인은 비리 의혹에, 기업인은 탈세 혐의에, 문화예술인은 스캔들이 먼저 연상되면서 아름답게 포장되기보다는 추하게 몰리기 일쑤다.

물론 근본적으로 추악한 죄에 대해서는 정당한 법의 칼을 대야 하겠지만 조금만 잘나가면 견제가 들어오는 인물 죽이기의 악순환 속에서 두고두고 사랑받는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일 정도다.

영화 속에서 하워드 휴즈도 청문회에 섰고 레이 찰스도 마약 복용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자연인이지, 이들이라 해서 완벽한 무결점 인물들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할리우드의 화려한 제작능력과 막강한 영향력을 통해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이라는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멋지게 포장됐고 큰 몫을 담당했다.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쟁국이나 우리의 발전 모델을 보고 쫓아오고 있는 국가들조차 자국의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다양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치열한 경쟁에 맞서고 있다.

우리가 한국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앞으로 어떤 인물을 국제적인 명사로 키우고 어떠한 한국적 가치를 내세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지금, 다른 나라들은 이미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답안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조현진 KOTRA, Invest KOREA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