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로비용 법인카드도 뇌물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C&그룹이 정·관계와 금융권 인사들에게 회사 법인카드를 건네주는 방식으로 로비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고 한다. 법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로비 대상자들에게 주고 한 달에 수백만~수천만원씩 맘껏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C&그룹이 은행 대출 등을 위해 로비를 벌이며 법인카드를 활용했다는 얘기다. 법인카드를 주고 거액을 쓰도록 한 뒤 갚지 않아도 된다면 이는 현금 다발을 안겨준 것과 다름없다. 똑같이 뇌물(賂物)이다.

기업의 법인카드는 요즘 로비와 뇌물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주는 사람 입장에선 뭉칫돈을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이 없고, 받는 사람 입장에선 사용자의 신분이 쉽게 노출되지 않아 선호한다. 시쳇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로비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탁의 대가성(代價性)을 규명하기도 어려워 처벌도 쉽지 않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주류 회사가 부담한 5000만원짜리 체크카드를 받아 썼지만 대가성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 그런 예다.

 C&그룹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008년 부산고검 검사가 건설회사 법인카드를 받아 3년 동안 9700여만원을 쓴 사실이 드러났고, 태광그룹이 방송사업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들에게 법인카드를 건넸다는 의혹이 검찰에 잡혔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 전반에 법인카드 로비가 만연돼 있다는 방증이다. 그동안 관행적인 금품수수 등 외형적 부패는 많이 개선됐지만, 법인카드 로비처럼 부패형태는 점점 지능화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한국이 178개국 중 39위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뇌물은 ‘직위 또는 권한이 있는 사람을 매수해 사적인 일에 이용하기 위해 건네는 돈이나 물건’이다. 매수를 목적으로 건네진 법인카드라면 당연히 포함되며, 이 법인카드로 술 마시고 분탕질을 쳤다면 준 쪽이나 받은 쪽 모두 뇌물수수죄나 알선수재죄로 엄중히 처벌돼야 마땅하다. 검찰은 이번 기회에 로비용 법인카드가 뇌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