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 투자 자문사의 신선한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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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반란’이라고나 할까. 자문형 랩 계약고 1위인 브레인투자자문(이하 브레인)이 증권사들에 ‘당분간 우리 회사 자문형 랩을 팔지 말아 달라’고 한 것 말이다. “4분기에는 고객 눈높이만큼 수익을 낼 장세가 펼쳐지지 않을 것 같아서”가 이유였다. 고객의 눈높이는 대략 연 20% 정도라고 했다.

<본지 10월 19일자 e1, e12면, 20일자 e3면>

 이를 두고 증권·투자자문 업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오고 있다. “운용 규모가 커져 수익을 내기 어렵게 된 것인데 장세 탓으로 둘러댔다”는 것 등이다.

 하지만 브레인의 결정이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투자하겠다고 돈 싸들고 온 고객에게 “지금은 우리한테 돈을 맡겨도 별로 수익이 나지 않을 테니 나중에 하라”고 말린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금융감독원도 “투자자 보호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자문형 랩 판매 중단 요청은 자문사 입장에선 제 살 깎아 먹기다. 들어올 수수료 수입이 줄어든다.

 박 사장이 수수료라는 ‘눈앞의 떡’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은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체득한 철학이라고 했다. 2007년 코스피지수가 1900을 넘었을 때였다. 펀드에 들려는 고객들이 증권사 문밖에까지 줄을 설 정도였다. 당시는 이미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세계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던 때. 하지만 증권사들, 그저 펀드 팔기에만 열을 올렸다.

 이내 주가지수가 미끄러져 내리면서 증권사들은 홍역을 치렀다. 항의가 빗발쳤고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박 사장은 이를 지켜보면서 ‘눈앞의 떡을 보지 말자. 고객에게 아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자’는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고 했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브레인의 판매 중단 요청을 받아들였다. 증권사 역시 수수료 수입 감소를 감내해야 하지만, 그보다 고객보호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증권업계의 세일즈 문화가 진일보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증권업계 한편에선 “수익률 따블, 따따블이 가능하다”며 고객을 유혹하는 묻지마 영업이 아직 남아 있는 것도 현실이다. 브레인의 결단이 이런 행태를 일소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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