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분권실험 8개월] 분권 실험 보는 다른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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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분권형 국정 운영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실려 있다. 당초 책임총리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노 대통령이 분권 구상을 본격적으로 꺼내든 것은 지난해 7월 초. 이해찬 총리가 취임한 며칠 뒤다.

당시 노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지도는 곤두박질쳤다. 노 대통령은 윤태영 대통령 부속실장을 따로 불러 "이 총리에게 다 넘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국회의 탄핵 소추로 업무가 정지됐던 기간에 고건 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했지만 큰 혼란 없이 넘어갔던 경험도 결심을 굳힌 요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권 실험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여야 정치권과 학자들의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 강원택 (숭실대교수)는 "지금은 대통령이 내각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허용해주는 수준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권력을 나누는 분권으로는 보기 어렵다. 기업의 책임경영 개념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고건 전 총리는 "아무리 총리에게 권한을 넘겨준다 해도 법이 정한 범위를 넘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현행 헌법 아래서 분권이라든지 책임총리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더 비판적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정국에 대해 은밀한 거래를 하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또 "대통령이 국민의 인기를 잃자 비판을 피하기 위해 총리 뒤에 숨어 있는 것"(김무성 사무총장)이라거나 "대통령 후보군을 띄우기 위한 정치쇼"(유승민 대표 비서실장)라는 비판도 있다.

여당의 평가는 다르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국민 정서가 권력 독점에 대해 거부반응이 워낙 크다는 점을 노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 "집권 초에는 국정 운영의 틀을 짜야 하기 때문에 분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 대통령이 여유가 생기면서 분권을 실행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분권 실험을 권력구조 개편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여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호웅 의원은 "지금의 분권 운영은 헌법의 틀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가 아닌 사람의 결단으로 시작된 측면이 있어 한시성을 갖는다"면서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과거의 독점 형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선 가까이 갈수록 여야 간, 대선 후보군 간 이해관계가 부닥쳐 어려워지는 만큼 대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올해 개헌 논의를 매듭지어 분권의 틀을 다져야 한다"며 분권의 제도화를 위해 개헌의 필요성까지 주장했다.

이정민.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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