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1인 뮤지컬‘위드아웃 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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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앤서니 랩은 절제되고 안정된 연기로 뮤지컬의 새로운 맛을 안겨주었다. [뉴벤처엔터테인먼트 제공]

앤서니 랩(39)이란 뮤지컬 배우가 있다. 아주 유명한 배우는 아니다. 경력 중 가장 돋보이는 건, ‘뮤지컬의 혁명’이라 불렸던 ‘렌트’의 초연 멤버였다는 점 정도.

그는 ‘렌트’에서 주인공 로저는 아니었지만, 마크라는 지적인 배역을 맡아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쳤다. 지금은 연출자로도 활동 중이다.

 외모는 평범하다. 여성 관객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할 만큼 멋져 보이진 않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앤서니 랩이라는 배우는 스타성이 강하진 않다. 연기력과 가창력은 꽤 있다고 하나, 솔직히 이런 배우 어디 한둘이랴. 화려한 이력도 없다. 그래서 그가 모노 뮤지컬 ‘위드아웃 유’를 한다고 했을 때 별로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게다가 작품은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을 토대로 한다. 얼마나 신파조로 우려 먹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왜 이런 선입견이 강했을까. 첫째는 모노 드라마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다. 한국에서 지금껏 모노 드라마나 뮤지컬이라고 하면 여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게 대부분이었다. 그 배우들, 기가 아주 셌다. 그래서 드라마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가기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작품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억지 설정이 많았으며 감정의 과잉으로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자신의 경험이 들어있지 않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100% 자기 얘기를 하게 될 때, 작가는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냉철히 거리를 두며 감정의 균형을 유지한 채 객관성을 갖기란 사실상 어려워진다.

 그러나 ‘위드아웃 유’는 의외였다. 오히려 서늘했다. 앤서니 랩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대 중앙에 서서 첫 대사를 할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는 작품에서 해설자·앤서니 랩 본인·’렌트’ 작곡자 조나단 라슨·어머니 등을 자유롭게 오고 갔다. 억양과 말투 등을 달리 하며 마치 대여섯 명이 출연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안정된 화술(diction)이 얼마나 중요하고, 뮤지컬에서 가사 전달력이 얼마나 근본적 요소인지를 일깨워주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묘사할 뿐이었다. 개막 직전 죽음을 당한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도,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어머니에게 토로할 때도, 어머니가 암과 싸우고 있는 것을 지켜볼 때도 그는 어설프게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다.

때론 상상력의 기름기보다 팩트(fact)의 건조함이 감동적일 수 있음을 차분히 보여주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새삼 앤서니 랩이란 배우가 크게 보였다. 단단한 기본기의 힘이다.

최민우 기자

 ▶앤서니 랩의 ‘위드아웃 유(Without You)’=31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 4만4000∼8만8000원. 1544-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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