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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부정'이 문제, 장점은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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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교 내신 문제와 관련해 부정적인 뉴스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내신을 부풀렸다는 둥, 교사가 현직 검사 아들의 시험답안을 대신 작성해 주었다는 둥, 시험 종료 후 특정 학생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할애했다는 둥 그 모양새와 방법 등이 내신 문제의 부실백화점을 연상케 한다.

모름지기 하나의 정책이 입안되고 결정되기까지는 전문가들이 모여 상당기간 논의하고 비판 수정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내신제도만큼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려되는 것은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되풀이됨으로써 내신제도가 지니는 본래의 교육적 의미가 손상되고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주지하듯 내신평가의 기준은 절대평가에 기초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학생들의 일정한 성취 정도에 따라 전원이 '수'를 받을 수도 '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는 집단의 질적 특성과 평가자의 평가기준에 따라 성취수준이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절대평가는 상대평가에 비해 객관적 선발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약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또한 절대평가는 교육에서 의도된 교육목표의 달성 여부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지향점이 학업성취 결과의 상대적 서열이나 비교에 관심을 두는 상대평가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학교가 대학입시를 의식해 경쟁적으로 성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함으로써 평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장교사들의 '교수편의주의'와 학생들의 '게으른 요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시험과 관련해 학업성취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바람직한 교육적 배려는 필요하지만 몇 쪽 몇째 줄에서 출제된다는 것까지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은 바람직한 평가방법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내신 부풀리기의 교육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교사들의 평가포기의 한 형태이자 학생들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무소신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물론 학부모들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공정한 내신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평가의 공정성 문제가 아니라면 교사의 평가권은 보호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평가자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평가결과에 대한 학부모들의 건설적인 피드백(feed back)은 백번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내 아이는 다른 과목에서 '수'를 받는 학생인데 특정과목에서 '수'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식이 되면 곤란하지 않은가?

교사들의 소신있는 교육평가를 위해서는 평가권에 대한 교사들의 새로운 인식과 학부모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내신성적 문제가 대학입시와 연계돼 있는 이상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상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신제도가 지니는 대긍정(大肯定)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병선 배화여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