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안화 절상 압박 ‘숨 고르기’ 일본은 시장 추가 개입 ‘명분 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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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다음 달 ‘서울 대회전’(G20 정상회의)을 앞두고 환율 전쟁 당사국들의 사전 정지작업이 한창이다.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은 한편으론 어르고 다른 한편으론 달래면서 위안화 절상 속도 높이기에 나섰다. 대규모 시장 개입 이후에도 엔고(高)가 지속되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일본은 한국·중국을 공격하며 추가 개입 명분 쌓기에 나섰다. 일본 내에선 한국 기업과의 경쟁을 위해 정부가 원화를 매입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미 ‘강온 양면 전략’=미 재무부는 15일 나올 예정이던 환율 보고서 발표를 G20 회의 이후로 연기했다. 미 의회는 이 보고서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별다른 실효 없이 중국의 반발만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미국 정부의 고민이었다. 결국 G20 회의 때까지 추이를 봐가며 중국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이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9월 이후 중국이 위안화 절상의 속도를 올려왔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위안화 문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정상회의는 탄탄하고도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 추가 진전을 이룰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율 보고서는 매년 두 차례 의회에 제출된다. 미 재무부는 올 상반기에도 발표를 석 달가량 늦췄고, 그 사이 중국은 위안화 변동폭 확대 조치를 내놓았다.

 당근과 함께 채찍도 꺼내들었다. 이날 미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이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미 철강노조는 중국 업체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낮은 가격으로 관련 장비를 국제시장에 내놓고 있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론 커크 USTR 대표는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우리의 권리를 적극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원화 공격론’=16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와 일본은행이 원화를 사들이는 시장 개입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론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화 값이 사상 최고치로 상승하고 있는데도 중국과 한국이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억제하고 있는 데 따른 불만이 이런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원화와 엔화의 가치가 크게 엇갈리면서 한국 기업들과 가격에서 경쟁이 안 된다는 게 일본 업계의 주장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원화 값은 달러에 대해 급락한 데 반해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며 오히려 가치가 뛰었다. 올 들어 원화 값이 빠르게 오르곤 있지만 엔화 값 상승세가 워낙 가팔라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잇따른 비판은 추가 개입을 위한 명분 쌓기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5일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가 일본이 추가 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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