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초승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선이(1967~ ), '초승달' 전문

한 사흘

열기운에 쌔근대는 아이 곁에서

눈뜨지 못하고

뜨거워지기만 하는 그믐 지새웠다

내 눈 속에도 조그마한 샘 솟아나

가만히

세상을 비쳐보는

萬物의 깊은 눈

트인다



열병에 시달리며 누운 아이 곁에 있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눈뜨지 못하고 뜨거워지기만 하는 그믐'이다. 그 그믐을 열게 하는 것은 어린 몸의 고통을 함께 앓아 본 자의 눈물. 눈물이 연 눈은 초승달 모양. '초승달'은 어머니의 눈 모양에서 온 비유로 보이지만 고통을 통해 정화된 눈의 은유로도 읽힌다. 그래서 그믐을 거쳐 온 초승달에는 세상을 비추는 '만물의 깊은 눈'이 있다.

김기택<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