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왼손 독립선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수도방위사령부 제22화학대대 소속 이아론(25) 병장은 왼손잡이다. 대대 전 병력의 2%에 불과한 소수지만 왼손잡이로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는 평소 왼쪽 어깨에 개머리판을 대고 왼손 검지로 방아쇠를 당겨 사격을 한다. 왼손용 소총이 따로 없어 탄피가 얼굴 쪽으로 튀지만 거리가 있어 문제될 게 없다. 물론 오른손으로도 사격할 수 있다. 수방사의 경우 시가지 전투 특성상 사격 훈련을 양손으로 다 한다. 양손을 모두 쓸 수 있는 이 병장의 사격 성적이 늘 높게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사격 말고도 '식사 때 왼손을 쓰다 보니 옆자리에 앉은 고참의 오른손과 자꾸 걸려 눈치가 보이는 점' 말고는 아무런 불편이 없단다.

▶ 왼손을 오른손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겠지. 방어벽의 왼쪽에서 사격을 할 때는 왼손으로, 오른쪽에서는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게 적에게 노출이 덜 될테니까. 왼손잡이 이 병장이 늘 자신만만한 비밀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쯤 되면 이제 19세기 영국의 역사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의 '왼손잡이론'은 고쳐져야 한다. 과거 왼손잡이는 방패를 오른손에 쥐기 때문에 왼쪽에 있는 심장을 보호하기 어려워 전쟁에서 생존율이 낮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 없이 정적인 왼손잡이 찰스 다윈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는 게 정설이지만, 20세기로 넘어 와서도 왼손잡이들이 푸대접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왼손도 함께 무시돼 왔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 이제 왼손을 복권시킬 때다. 왼손잡이에 대한 사시를 거둬야 함은 물론 자신도 반쪽 인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을 바꿔 보자. 신체적 조화뿐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발상의 전환까지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글=이훈범 기자<ciei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