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외교 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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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끌어안고

유럽순방 만찬에 시라크 초대…이라크전쟁 때 앙금 털어내

유럽을 순방 중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21일 부시 대통령은 벨기에 주재 미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주빈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이라크전에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던 시라크를 제일 먼저 만찬에 초청하는 '성의'를 보인 것이다. 만찬에 앞서 부시는 "시라크를 만날 때마다 좋은 충고를 듣는다"고 치켜세웠다. 시라크도 "부시 대통령과는 늘 '따스한 관계'"라고 화답했다. 물론 이견도 있었다. 부시가 반대하는 유럽연합(EU)의 대 중국 무기금수 해제조치에 대해 시라크가 "해제는 적절한 조치"라고 일축한 것이다. 또 부시는 시라크를 자신의 크로퍼드 목장에 초청할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난 좋은 카우보이를 찾고 있다"며 즉답을 피해 아직도 서먹한 사이를 노출했다.

그러나 두 정상은 만찬을 통해 앙금을 상당 부분 털어냈다는 평가다. 시라크는 프랑스가 이라크 경찰 1500명을 육성하기 위해 2000만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미국에 이미 제의했음을 상기시켰다. 또 이란의 핵개발에 우려를 표시하고, 레바논에 주둔 중인 시리아군의 철수 요구에도 공조를 다짐했다. EU 지도국인 프랑스가 부시 대통령의 중동정책 전반에 협조 의사를 비친 셈이다.

*** 이스라엘 때리고

정착촌 건설 중단 촉구…팔레스타인 입장 지지

부시는 21일 브뤼셀에서 연설하면서 가장 친한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부시는 "미국과 유럽이 추구하는 당면의 최대 목표는 중동 지역의 평화"라고 전제한 뒤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의 정착촌 건립 활동을 모두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는 이어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와 관련해 현재 구상하고 있는 부분적.파편적 철수보다 훨씬 더 광범하고 본격적인 철수를 추진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현재 구상처럼 조각난 땅덩어리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들어 줄 경우 그 국가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이 기형적 영토를 갖고 태어날 경우 국가 기능을 못한다고 못박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양보를 촉구한 셈이다.

부시는 바로 이 대목에서 300여명의 유럽 정.재계 인사로 구성된 청중으로부터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이는 2004년 4월 샤론이 워싱턴을 방문해 철수 구상을 처음 공개했을 당시 부시가 '적극 지지'했던 입장과 상반돼 주목된다. 당시 부시는 샤론의 '서안 지구 극히 일부 철수' 주장을 "현실적"이라고 옹호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었다.

유럽 전문가들은 부시가 2기를 맞아 동맹 중심의 외교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인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피터 맨덜슨 EU 통상집행위원은 "유럽이 미국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부시도 경험을 통해 혼자보다 우방과 협력하는 게 좋다는 걸 안 것"이라고 지적했다. CNN방송도 "부시 대통령은 '늙은 유럽(서구)' 대신 '젊은 유럽(동구)'을 챙기겠다던 2년 전과는 달리 '하나의 유럽'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해 유럽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워싱턴=오병상.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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