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어머니를 몰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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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10면

가을은 빨래하기 좋은 계절이다. 햇볕은 따갑고 바람은 서늘해 아내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난여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천요하우 낭요가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늘은 비를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을 가려 하네” 라는 이 말에는 다 아는 것처럼 중국 고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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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 진수영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돼 남편이 죽자 개가하지 않고 아들, 주요종을 키우며 살았다. 남편도 없이 여자 혼자 자식을 키우자니 살림은 궁핍하고 고생문은 열렸다.

수영은 젊고 예뻤다. 은근한 눈길을 주는 사내도 많았다. 여기저기 중신 자리가 들어오기도 했다. 밤이면 잠도 오지 않았지만 아들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그 세월을 참는다. 아무리 일해도 생계는 막막하다. 아들은 장성하도록 글공부만 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공부를 위해 사교육도 시킨다. 교육비가 만만치 않지만 학식이 높은 장문거라는 과외선생을 붙인다. 어머니는 더 많은 일을 한다. 마을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든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침을 삼키고, 갖고 싶은 옷이 있어도 눈을 감는다.

어머니는 아들을 생각하며 인내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장원급제한다.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한 것이다. 황제가 합격자들을 초대한다. 그날의 주인공은 단연 장원으로 급제한 주요종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담이다. 원래 조정은 미담을 좋아한다. 황제는 수석 합격자에게 소원이 있느냐고 묻는다. 효심도 장원감인지 어머니에게 열녀문을 하사해 주길 청한다. 황제는 청을 들어준다.

아들은 이 기쁜 소식을 어머니께 전한다. 기뻐할 줄 알았던 어머니는 한숨을 쉰다. “네가 급제했으니 어미로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네 뒷바라지는 이제 그만 하고 나도 내 삶을 살련다. 너의 스승에게 시집을 가야겠다.” 어머니는 아들의 과외선생인 장문거와 사랑에 빠졌다. 아들의 학업 문제로 자주 상담하다 어느새 정이 들고 서로를 흠모하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들은 놀란다. 어머니가 너무 고생해 알츠하이머병이라도 나신 건가. 아들은 어머니를 막는다. “안 됩니다. 감히 황제를 속인 죄로 저는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기가 찬다. 아들이 공맹을 알고 인의를 공부한 사람인가. 백성을 다스릴 사람이 어찌 어미의 마음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단 말인가. 백성이 하늘이니 천자인 황제는 결국 백성의 자식이다. 제가 황제의 노여움은 두려워하면서 백성인 어미의 가여움은 애통해 하지 않는 것인가. 어머니는 치마를 벗는다. “이 치마를 빨아 내일까지 마르면 개가하지 않겠다.”

아들은 하늘을 본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잠자리가 날고 있다.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치마는 한 시간이면 마를 것이다. 아들은 동의한다. 그러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시간당 300mm가 넘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진다.

아들은 하늘의 급변을 도저히 알 수 없다. 글공부만 한 젊은 아들에게는 늙은 어머니의 신경통이 없으니까. 아무리 맑은 날이라도 어깨가 결리고 무릎이 시큰거리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는 걸 아는 홀어머니의 신경통이 없으니까.

베란다에서 빨래를 다 넌 아내는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비가 올 것 같네.” 아내도 시집을 가고 싶은 것이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
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
로 우유부단하고 뒤끝 있는 성격이라 평한다. 웃음도 눈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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