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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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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가브리엘 마르케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면면은 화려함 그 자체다. 인류 문화 유산의 계승자들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반대편엔 제임스 조이스, 헨리크 입센, 마르셀 프루스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리고 레프 톨스토이로 구성된 리스트도 있다. 앞의 수상자 그룹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는 ‘노벨상 탈락자 그룹’이다.

톨스토이는 1901년 제1회 노벨 문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그해와 이듬해 각각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과 독일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에게 밀렸다. 그의 조국 러시아와 노벨상 주최국인 스웨덴의 오랜 정치적 갈등 때문이었다. 안톤 체호프와 막심 고리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옛 소련의 성립 이후엔 정치적 성향이 크게 작용했다. 1931년 최초의 러시아인 수상자가 된 이반 부닌은 러시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시인이었다. 1958년에도 상은 사회주의의 실상을 고발한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돌아갔다. 반체제 인사가 아닌 소련 작가는 65년 『고요한 돈강』의 숄로호프가 처음이었다.

남미의 대표적인 작가들도 현실에 대한 입장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71년의 파블로 네루다에서 올해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이르기까지 독재에 맞선 인물들이 선정위원들의 호감을 샀다. 반면 환상적 리얼리즘의 정점으로 꼽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옹호한 전력 때문이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한국의 시인 고은도 훌륭한 후보로 꼽힐 만했지만 이번에도 기대는 헛된 희망으로 그쳤다. 이와 함께 과연 한국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자격을 갖고 있는가 하는 여론도 일고 있다. 국내 독서계가 과연 세계 수준의 문인을 길러낼 만한 토양을 갖추고 있느냐는 반성이다.

두 명의 수상자를 내놓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서점에서 쉽게 드러난다. 올해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는 일본에서 400만 부, 한국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렸다. 한국 출판시장이 세계 10위권이라지만 문학 비중은 2.8%에 불과하다. 수상의 영광은 당분간 시인이나 작가가 연예인 못잖은 스타가 될 수 있는 나라들에 양보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