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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뭐로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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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렇게 국정감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쉽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감사를 받는 정부가 어떻게든 껍질을 벗지 않으려고 버티기 때문이다.

헌법 61조는 국회의 국정감사 권한과 기능을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국정감사를 원활하게 추진하도록 필요한 자료 제출, 증인 출석을 요구할 수 있도록 명문화돼 있다.

또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국회의 자료 제출과 증인 출석 요구를 거부했을 때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국정감사의 권한과 의미가 분명한데도 현실은 전혀 다르다.

국회가 자료 제출을 요구해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는 것이 습관처럼 반복된다. 결정적인 증언을 해줘야 할 증인조차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공공연히 출석을 거부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번 국감도 예외가 아니다. 증인들의 ‘국감 보이콧’이 도를 넘었다. 외교통상부에서 벌어진 고위 간부 자녀들의 특채 비리와 관련한 전직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금융 비리에 연루된 금융계 인사들도 불출석 사유서만 던져놓고 나오지 않았다. 그 내용을 봐도 해외출장, 건강, 교육, 심지어 선영 보수 등 불출석 이유로 인정해 주기엔 너무 잡다하다.

자녀 특채 의혹을 받고 있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일본 대학생들에 대한 특강과 요양을 한다는 사유서만 내놓고 일본으로 달아난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고위직 관료를 지낸 사람들마저 이렇게 국회의 헌법·법률적 행위를 무시하니 국회에 대한 경시(輕視)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봐야 언론이 불출석한 증인을 질타하고, 여론 심판으로 떠드는 정도로 끝내는 게 전부다. 그런 상태에서 또다시 그 다음 해의 국감을 한다고 나서지만 이래서야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이런 관행을 극복하려면 국회가 공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기관으로 바로 세울, 보다 강력한 행정적·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

처방은 두 가지 내용을 혼합해 접근해야 한다. 미국은 증인 출석을 강제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출석 증인의 수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회의 사전 조사 기능을 강화해 놓았다.

우리도 이런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우선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함부로 기피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률 개정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석을 하지 않으면 국회가 상임위 수준에서 소환장을 발송하고, 법원이 이를 강제 집행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12조에 명기된 증언 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해 구속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다.

이와 함께 국회가 증인 채택을 최종 결정하기 전에 내부조사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감 전에 개별 상임위별로 사전 조사 및 검증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다. 여기서 증인 후보에 대해 충분히 조사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증인으로 채택하도록 선별하면 증인 채택과 관련한 잡음을 줄일 수 있다.

국회의 헌법적 활동이 묵살되는 것은 정치인에 대한 사회 전반의 경시 태도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정치인을 경멸한다고 국회의 헌법 기능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일부 국회의원이 자질을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해도 국회는 엄연히 헌법기관이고, 민주주의의 보루다.

국회의 활동은 특정 정치인의 행동이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공적 기능으로 인정하는 풍토를 회복해야 한다. 국회가 기능을 잃어 버리면 대의민주주의가 설 자리를 잃어 버린다. 우리가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는 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고난의 길을 걸어 왔는가.

국정감사의 요구는 국민의 요구다.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국회의 행정부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행정부, 그것도 고위 관료부터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연정 배재대학교 교수·공공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