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란과 원화 결제 된다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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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란에 대한 우리나라의 경제 제재가 발표된 지 8일로 한 달째. 이란에 수출하는 업체들의 관심은 온통 원화 결제 문제다. 한국무역협회에 개설한 이란 무역애로 신고센터에는 이런 내용의 항의성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당초 계획은 야심찼다. 지난달 17일 정부는 한·이란 간 무역 거래 시 원화 결제가 가능하도록 국내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를 개설하기로 이란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측이 원유 수출대금을 우리나라 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계좌에서 수령해 이 돈으로 우리 기업들의 대이란 수출대금을 원화 결제해 주는 방식이다. 정부 발표에 맞춰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은 지난 1일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원화 계좌를 개설해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대이란 교역이 가능해졌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지금까지는 무색한 상황이다. 확인 결과, 원화 결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란이 국내 은행에 원화 계좌만 개설했을 뿐 이 계좌에 국내 원유 수입업체들의 돈이 입금되지 않았고, 자연히 국내 수출업체들에 줄 돈도 없다. 계좌만 덩그러니 있는 셈이다.

정부와 은행 측은 실무협의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도 당황하는 기색이다. 이란 제재 대상 은행(18곳) 이외의 은행으로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이란 리얄화와 원화의 교환 비율을 정하는 등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만큼 업체들이 적극 나서 이란 업체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우왕좌왕하자 기업들은 원화 결제 시스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혼란이 가중되자 최근 국내 은행 관계자들은 이란에 들어가 실무협의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들은 실무협의할 게 아직 남아 있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이 사이 우리 중소업체들의 고민은 깊어간다. 이란 제재에 동참한 우리 정부의 결정은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교역 순위 15위의 이란 시장을 그대로 손 놓을 순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수출업체에 돌아가고 있다. 꼼꼼한 준비로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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