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월세 대란'… 임대료 10% 이상 폭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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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프랑스 파리에서 부동산 투자회사들의 임대 아파트 매각으로 집을 잃고 도시 밖으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르 피가로 등 현지 언론들은 최근 상인이나 교사, 그리고 기업체 중간간부 등 일부 중산층들까지 임대 아파트를 구하지못해 줄줄이 파리를 떠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건축가격 지수와 인플레를 감안해 국립 통계청(INSEE)이 정기적으로 고시하는 파리의 임대료 상승률은 올해에 이미 5%나 올랐다. 지난해엔 평균 10% 이상이 올랐다.

이처럼 임대료가 뛰어오르는 상황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든지 비우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통고를 받는 세입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파리의 상당수 임대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투자회사들이 앞다투어 임대아파트를 팔아치우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

1990년대 말 이후 저금리로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하던 투자회사들은 파리에 있는 부동산회사 소유 임대아파트를 대거 사들였다. 2003년에는 미국계 투자회사 웨스트브룩이 12억유로(약 1조6200억원)를 투자해 한꺼번에 3200여 채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러다 부동산 시장이 최근 10여 년간 상승세를 타면서 기대 수익률이 훌쩍 올라가게 되자 이제는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동 전체를 인수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한 채씩 떼어내서 팔기도 한다. 지금까지 팔려나간 아파트만도 3만여 채에 달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이들 투자회사들은 최근 10년 동안 오를 데로 오른 아파트 가격을 부르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세입자 중에서 자기가 살던 아파트를 사들인 사람이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주인에 따라 장기간 임대료를 한푼 안 올리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노약자나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이런 행위가 관용으로 인정돼왔다. 그러나 이제는 임대 아파트 가격과 임대료가 껑충 뛰어오르면서 살 곳을 쉽게 구하지 못하게 됐다. 파리를 등지고 임대료가 싼 지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프랑스가 자랑하던 또 하나의 '톨레랑스(관용)'가 돈의 힘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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