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최경주의 그늘 … 같은 조 선수들 맥 못 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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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홀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린의 경사를 살피고 있는 최경주. [연합뉴스]

최경주(40)·배상문(24)·박은신(20)이 챔피언 조에서 격전을 치렀다.

그러나 우승 상금 1억6000만원은 바로 앞 조에서 경기한 스무 살의 재미동포 존 허가 가져갔다. 존 허는 3일 경기도 용인시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남코스(파72·7660야드)에서 벌어진 KGT 신한동해오픈에서 합계 11언더파로 우승했다. 최경주는 9언더파 2위, 배상문과 박은신이 8언더파로 공동 3위를 했다.

골프는 코스와의 싸움이라고도 하고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도 말한다. 어찌됐든 대선수와 같은 조에서 경기하는 것은 어렵다. 심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경주와 한 조에서 경기한 선수들은 “최경주의 그늘이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한국 최고의 골퍼인 그의 강력한 포스(힘) 때문에 긴장이 되는 것이 첫 번째 그늘이다. 또 그를 따르는 구름 갤러리도 또 다른 그늘일 수 있다.

최경주가 샷을 하면 일부 갤러리는 동반 선수의 경기에 상관없이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움직인다.

최경주가 버디에 성공하면 다른 선수가 퍼트를 할 때까지도 박수를 친다. 최경주에 대한 갤러리의 응원에 기를 뺏긴다고 여기는 선수도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최경주와 함께 경기한 선수들의 성적이 좋지 못했다. 이 코스와 궁합이 딱 맞는다고 했던 지난해 우승자 류현우(29)는 최경주와 동반한 1, 2라운드에서 합계 3오버파를 치며 컷탈락했다. 3라운드에서 함께 경기한 김비오(20)와 황인춘(36)은 똑같이 75타를 쳤다. 두 선수는 2라운드까지 7언더파를 몰아쳤지만 최경주와 한 조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마치 타이거 우즈와 같이 플레이한 선수들이 주눅이 들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3일 최종 라운드에서도 그랬다. 배상문과 박은신은 최경주를 응원하는 갤러리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해야 했다. 전반까지는 잘 버텼지만 후반에는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갤러리 중엔 내 팬도 있을 것이며, 이겨낼 수 있다”고 한 배상문은 후반 보기 4개를 했고 한때 단독 선두로 올라섰던 박은신도 후반 보기 3개를 하며 선두 경쟁에서 탈락했다.

그러면 최경주는 갤러리 덕을 보고 있을까. 그도 피해자였다. 최경주는 12번 홀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 13번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를 가까이서 보려는 갤러리의 움직임에 OB가 나면서 트리플 보기를 했다. 최경주는 “갤러리가 많이 와 주시고 에티켓도 좋았지만 조금만 더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최경주는 자신과의 경기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는 후배들에게 타이거 우즈와 함께 경기할 때의 경험을 얘기했다. “한 조를 따라다니는 갤러리가 1만5000명 정도다. 어디까지는 무시하고 어느 선을 넘으면 중단시켜야 할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 상대의 경기나 갤러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 내 게임이 안 된다. 내 경우는 기도를 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우승은 앞 조에서 부담 없이 경기하던 존 허가 차지했다. 존 허는 마지막 홀에서 1m 파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한 타 차로 쫓겼으나 최경주의 18번 홀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어가는 바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용인=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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