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능동적 대처 필요한 3대 세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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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에게 군권(軍權)부터 부여했다는 것이다. 당대표자회 개회 직전 대장 칭호를 부여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한 것은 선군(先軍)정치 하에서 군의 지지가 후계구도 구축에 지름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정은이 군부의 지지를 받는 후계자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김정은의 군부 내 위상을 더욱 높이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당권과 관련해서는 당 고위직에 비공개로 진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공식적으로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그쳤다. 여전히 선군정치를 기반으로 후계체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그동안 외부의 관심이 집중됐던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전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성택이 최소한 정치국 위원에 진입할 것이라는 예상은 틀렸다. 장성택의 정치국 후보위원 진입은 과도한 권력을 한 사람에게 주지 않으려는 김정일 위원장의 정치적 판단이다. 어느 한 사람에게 힘을 집중시키기보다는 김정은을 보좌하는 그룹들의 권력 분점을 통해 상호 견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이 이번 인사의 중요한 특징이다. 한편으로 ‘경쟁’하면서도, 모두 다 김정은을 위해 일치단결하라는 것이 김위원장의 뜻이다.

급격한 세대 교체보다는 노(老)·장(壯)·청(靑)의 ‘조화’를 통해 당의 안정을 중시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등에 노·장·청 안배가 두드러진다. 과도한 세대 교체를 지양한 것은 후계체제가 급격한 권력 변화보다는 김 위원장 체제의 우산 속에서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이 앞으로 최소 3~5년간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이번 인사의 중요한 특징은 3대 세습의 불안정성을 우려한 안전장치 차원의 인사인 것이다.

3대 세습이라는 유례없는 김정은 후계체제의 공식화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행보다. 그러나 이 체제와 우리 정부는 대화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김정은 후계체제 공식화를 계기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등은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으로선 자신의 대내 입지를 굳히기 위해 주민들에게 경제·외교적 성과를 보여 줘야 하는 입장인 만큼 대남 및 대외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 회생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전반을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후계체제 구축 과정은 북한 내부 문제다”라고 말한 것은 잘한 것이다. 새롭게 재편되는 북한 권력 심부의 변화에 대해 우리 정부의 유연하고 능동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김정은 후계체제 공식화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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