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빼앗긴 이름 한글 졸업장으로 '광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 김성열씨가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된 천안초교의 학적부를 펼쳐보이고 있다. 한문으로 표기된 본래 이름이 붉은색 두 줄로 지워지고 일본식 이름이 적혀 있다. 송봉근 기자

충남 천안의 천안초등학교(교장 허은)는 19일 뜻 깊은 졸업식을 한다. 이날 6학년 120명과 60여년 전 이 학교를 졸업한 '원로동문' 109명이 함께 졸업장을 받는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으로 자신의 원래 이름 대신 일본식 이름으로 졸업장을 받은 70대 노인들에게 한글 이름의 졸업장을 다시 수여하기 위해서다.

이 소식을 접한 정만영(77.1942년 졸업)씨는 "눈을 감기 전에 치욕스러운 인생역정의 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45년 졸업한 안병욱(74)씨도 "그동안 일본 이름으로 쓰인 졸업장을 손자들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없었다"며 "부끄러운 과거를 털어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학교 동창회는 2001년부터 '졸업생 본(本)성명 복구운동'을 벌여왔다. 동창회는 창씨개명 된 채 졸업한 41~45년도(28~32회) 졸업생 1202명을 대상으로 수소문해 109명의 주소를 찾아냈다.

학교 측은 졸업장 재수여식과 함께 학적부와 졸업생 명부의 본성명 환원 작업에 들어간다. 당시 학적부엔 한자로 표기된 본래 이름이 붉은 두 줄로 지워지고 창씨개명 된 일본식 이름이 적혀 있다.

본성명회복운동 본부장 김성열(65)씨는 "해방 60돌을 맞는 해에 선배 졸업생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져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본성명 복구 청원서를 정부 각 부처에 냈으나 모두 소극적인 반응이었다"며 "특히 주무 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는 '경비가 많이 든다' '치욕적인 역사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에 동창회는 전국적 '복구'운동을 미루고 지난 1일 학교운영위원회에 복구 청원을 냈고, 학교장은 운영위 의결에 따라 복구를 결정했다.

천안=조한필 기자<chopi@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