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치사한 부모, 몰염치한 선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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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통일비용 문제 역시 동일하다. 비용을 이유로 통일을 지연하자거나 아예 통일을 하지 말자는 네 견해는 잘못이다. 통일은 기회가 오면 해야 하는 것이지 비용을 이유로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용을 이유로 한시가 급한 아내의 수술을 미룰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통일에는 비용이 수반되지만 오히려 편익이 더 크다. 예컨대 당장은 수술비용이 들겠지만 아내를 살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가. 아내가 없으면 음식·빨래·청소 등 집안 살림을 네가 모두 해야 한다. 아이들도 네가 직접 챙겨야 한다. 그만큼 노력과 시간·비용이 드는 것이다. 더 큰 편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편익이다.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아내가 살아있음으로써 가정에 깃들게 될 평화와 행복은 얼마나 소중한가.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늘 곁에 있다는 것이 교육과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인가. 더욱이 아내를 통해 아이들이 배울 가족의 사랑과 가정의 화목함은 아내가 살아있을 동안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네 자식의 자식에게로 영원히 이어진다. 비용은 유한하지만, 편익은 무한한 것이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국방비를 줄여 보다 생산적인 용도에 사용하면 그만큼 이익이다. 내수시장이 확대되고 취업기회도 늘어난다.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도 우리 것이 된다. 중국 시장으로 가는 물류비도 줄어든다. 통일의 경우도 무형의 편익이 훨씬 더 크고 소중하다. 이산가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전쟁 위험의 공포로부터 영원히 해방된다. 감히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가치다. 통일한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가 가져올 편익 또한 상당하다. 학술·문화의 발전 기회가 향상되고, 관광·여가의 선택 기회도 늘어난다.

이외에도 편익은 무수히 존재한다. 이러한 통일편익은 한반도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발생한다. 통일편익은 무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비용을 이유로 통일을 기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무한한 편익을 모른 체하고 유한한 비용만을 걱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네 생각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편익이 비교도 못할 만큼 크지만, 통일 직후에는 비용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수술비용은 당장 드는 것이고, 아내가 주는 편익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타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따라서 비용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래서 통일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라면, 너는 치사한 부모이고 몰염치한 선배일 뿐이다. 편익이 무궁무진함을 알면서도 단기적인 비용 부담이 싫다고 네 자식과 후배에게 통일을 미루는 셈인 탓이다. 자식과 손자, 그리고 그 후손의 후손들은 우리처럼 분단 조국에서 맘 졸이며 불편하게 살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네가 부담하게 될 얼마간의 부담 때문에 통일이 싫다는 이야기는, 치사와 몰염치를 넘어 반인륜적·반역사적인 것이기까지 하다. 더구나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다. 아무리 네가 싫다고 해도 소용없다. 네가 수술비용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생길 아내의 병이 안 생기진 않을 것처럼.

야단쳤으니, 마음 편해질 한마디 하마. 통일비용은 언론에 떠도는 추정치만큼 크지 않다. 비용은 편익을 차감한 순비용이어야 하는데, 기존 추정치들은 단지 총비용인 탓이다. 당연히 실제 비용은 추정치보다는 훨씬 작을 것이다. 게다가 통일비용이란 우리의 능력에 맞게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독일은 통일 이후 고속도로를 한꺼번에 10개 건설했어도 우리는 능력이 부족하면 7개만 우선 건설하고 나머지 3개는 불편하더라도 당분간 기존 국도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옆집 부인이 제일 비싼 병원에서 수술 받고 최고급 특실에 입원했었다고 해서 네 아내도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러니 더 이상 바보 같은 소리, 치사하고 몰염치한 이야기는 이젠 그만 해라, 제발.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