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쿄발 환율전쟁에 미리 대비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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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정부가 그제 2조 엔(약 27조원)을 풀고 달러를 사들이는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을 했다. 6년6개월 만이다. 엔고(高)에 미온적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엔화가 달러당 82엔대의 초강세를 보이자 전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 경험으로 미뤄보면 일본 정부의 단독 개입은 항상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미국·유럽이 이번 조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만큼 장기적인 엔화 약세는 기대하기 어렵다.

엔화 강세는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불안으로 국제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엔화로 몰리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엔 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의 일본에서 돈을 빌려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하는 기법)로 엔고 압력을 피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일본과 엇비슷한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차가 좁혀지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는 설 자리를 잃었다. 여기에다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돈을 풀어 국채금리를 더 떨어뜨리면 추가적인 엔화 강세를 피하기 어렵다.

일본의 시장 개입으로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도쿄발(發) 환율 전쟁이다. 찰떡 공조를 과시해온 주요 20개국(G20)이 균열될 가능성도 커졌다. 한정된 세계시장을 놓고 수출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낮추다 보면 환율전쟁을 피하기 어렵다. 국제 공조가 막을 내리고 제 살 길을 찾아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시작되는 것이다.

환율전쟁이 벌어지면 엔화와 중국 위안화는 상당기간 강세를 보일 공산이 크다. 원화도 동반강세로 돌아서게 된다. 한국은 지금까지 원화 가치 급락→수출 증가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해 왔다. 이제는 역방향의 악순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환율전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기술력과 품질 등 비(非)가격경쟁력을 높이고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게 유일한 방도다. 오랜 시간과 엄청난 갈등이 수반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도쿄에서 피어오른 먹구름을 보면서 우리가 미리 대비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