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서 흘러나온 카드 쓰던 시절 디자인 개념 접목한 ‘획기적 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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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바른손 카드는 1970년에 생겼다. 당시엔 미8군에서 흘러나온 카드나 이를 베낀 카드, 물감을 칠해 만든 수제 카드가 대부분이었다. 학생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박영춘(71) 회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새로운 것을 하자’는 생각에 카드에 디자인 개념을 접목시키기로 했다. 브랜드 이름은 ‘맞다, 옳다’를 뜻하는 ‘바른’에 창조적인 일을 하는 ‘손’을 합쳐 ‘바른손’으로 정했다. 로고(사진 위)는 홀씨를 날리는 민들레 모양으로 했다. 미국산 카드와는 다르게 우리 자연과 풍경을 담았다.

박 회장은 일단 시장이 가장 큰 연하장부터 손을 댔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일단 12종의 각기 다른 디자인이 실려있는 샘플북을 만들어 주변 지인들에게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물었다. 지인들이 고른 6종을 각 40만 장씩 여름부터 미리 만들어놓기로 했다. 생산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팔려 나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박 회장은 잘 팔릴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강원도 춘천 남춘천역에서 구두 닦는 일을 하던 젊은이 등 30여 명의 직원을 구해 서울 중구 을지로3가 3층 공장에서 칸막이로 공간을 나눠 카드 생산에 들어갔다. 야전 침대를 놓고 숙식을 하며 카드를 만들었다. 여름 내내 만든 240만 장의 연하장은 11월 하순 판매를 시작하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고객들이 사무실 계단까지 줄을 서서 구매해갔다. 이듬해엔 50절지 사이즈 일색이었던 연하카드 시장에 40절지 사이즈를 출시해 또다시 히트를 쳤다.

이후 바른손은 85년 문구·팬시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90년대 후반 팬시 부문을 따로 떼 매각하는 아픔을 겪었다. 카드 부문은 그대로 창업자 박 회장이 디자인을 총괄하고, 딸 박소연 사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2001년엔 중국 상하이에 현지 공장을 설립했다. 일본으로 한 해 400만 달러(약 47억원), 유럽으로 한 해 200만 달러 정도가 수출된다.

민들레 로고는 2005년부터 타히티 섬의 ‘티아레’ 꽃으로 바뀌었다.(사진 아래) 티아레 향기처럼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한다는 뜻을 담았다. 한 해 매출은 약 120억원으로 청첩장 시장에선 65%, 다른 카드 시장에서도 4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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