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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박테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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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942년 11월 19일 미국 보스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상을 입은 400여 명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화상을 입어 포도상구균이란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는 치료제가 없어 패혈증으로 대부분 숨졌기 때문이다. 이때 정제되지도 않은 ‘페니실린’이 사용돼 200여 명의 목숨을 구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항생제 페니실린이 첫선을 보인 순간이다.

인류의 역사는 세균과 항생제의 전쟁이기도 하다. 인간의 몸에만 세균과 미생물 600조 개가 더불어 사니 그럴 만도 하다. 세균과의 전쟁에서 얻은 첫 성과물이 바로 페니실린이다. 페니실린이 등장한 건 고작 70년 전 일이다. 그전의 인류는 세균의 위협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페스트 또한 세균이다.

‘기적의 약’으로 불렸던 페니실린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페니실린의 분자 구조를 파괴해 무력화해 버리는 신종 세균이 나타나서다. 40년대 말에 이미 포도상구균의 50%가 페니실린에 내성(耐性)이 생겼다고 한다. 채 10년도 못 버티고 세균의 반격에 손을 들어 버린 셈이다. 인류는 ‘메티실린’ ‘반코마이신’ 등 2세대, 3세대 항생제를 계속 개발해 재반격에 나섰지만 세균과의 전쟁은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균도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면서 돌연변이 ‘괴물 세균’이 잇따르는 탓이다. 이른바 기존 항생제가 통하지 않는 ‘수퍼박테리아’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보다 더 무서운 적이 수퍼박테리아다. 미국의 2005년 에이즈 관련 사망자는 1만2500명이지만 수퍼박테리아의 일종인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 감염 사망자는 1만8650명에 이른다. 엊그제 일본에선 수퍼박테리아인 ‘아시네토박터균(MRAB)’ 감염으로 9명이 사망한 소식이 전해져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한국도 2년 전 4명이 이 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돼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달엔 ‘수퍼버그’로 불리는 신종 수퍼박테리아 ‘NDM-1’의 국제 확산에 대한 경고가 나와 지구촌 전체가 불안하다.

수퍼박테리아의 출현은 항생제 남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세균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앞서 항생제 남용 방지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인류가 페니실린 이전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이 말부터 새길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