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지나간 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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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 11면

하늘이 참으로 요란합니다. 온 나라가 무더위와 세찬 비에 야단맞습니다. 산골 동네는 특히 날씨에 민감합니다. 너무 더우면 들에 나가기 힘들고, 비가 세게 오면 길이 파이고, 논밭이 물에 잠겨 꼼짝 못 하기도 합니다. 저의 집 사정 또한 비슷합니다. 집 주변이 파이고, 밭은 잡초들로 밀림이 되었습니다. 무더위와 잦은 비에 게으름만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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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때를 놓치면 그만큼 일이 힘들어집니다. 백중 전에 풀을 베어야 이듬해에 풀이 덜 납니다. 백중 어간에 풀씨가 영글고 그 씨가 땅에 떨어지면 내년에는 풀이 두 배, 아니 열 배로 늘어납니다. 여태 놀고 있으니 내년에도 뻔합니다. 농사를 짓든, 안 짓든 시골 생활은 풀 매기가 기본입니다. 올해는 기본도 충실히 못했으니 날씨 탓으로 돌리기도 민망합니다.

비구름이 깨지고 하늘이 열렸습니다. 농사꾼이라면 낫을 들고 논밭에 나갔겠지만 저는 사진기 들고 들판에 나갔습니다. 하늘이 고맙고 아름다워 어쩔 수 없습니다. ‘낫’은 내일 들겠습니다. 애초에 농사꾼이 되긴 틀린 인간입니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죠. ^^.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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