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 그걸 보여준 ‘거리 오케스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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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체피 보르사치니 지음, 김희경 옮김
푸른숲, 276쪽, 1만4500원

2008년 1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남미의 청소년들이 무대에 올랐다. 일반 오케스트라 1.5배 수준의 규모, 다듬어지지 않은 생생한 열정으로 차이콥스키 교향곡을 들려줬다. 앙코르 곡에 이르자 단원들은 의자에 올라가 춤을 췄다.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우리에게 충격을 남겼다. 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29)은 미국 명문 LA 필하모닉의 최연소 지휘자로 임명 받아 이미 음악계의 스타가 된 인물이었다.

이들을 길러낸 것이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시스템’이라는 뜻의 국가적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다. 베네수엘라 전국에 지역 센터를 세워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폭력과 마약에 익숙한 거리의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쥐어주기 시작한 때는 1975년. 한 공장의 창고에서 음악가 8명이 모여 시작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500여개의 오케스트라와 음악 그룹이 존재한다. ‘엘 시스테마’를 거쳐간 사람은 약 30만 명. 이 책은 그 35년의 기록이다.

베네수엘라의 일간지 기자였던 지은이는 ‘엘 시스테마’의 성공 비결을 오케스트라라는 ‘조직’에서 찾는다. “조직에서 배운 도전의식과 협동심, 질서, 선의의 경쟁, 화합과 연대 등의 가치가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사회 운동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일대 일 레슨 아닌 오케스트라에서 ‘엘 시스테마’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교육 과정은 잘 하는 연주보다 즐기는 음악에 맞춰져 있다. 두다멜과 같은 세계적 스타 뿐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을 길러낸다. 이것이 2년 전 공연에서 우리가 받은 충격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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