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악바리 VS 순둥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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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호전적이고 거칠고 드센 사람과 점잖고 유순하고 온화한 사람. 사회생활에선 누가 더 이득을 볼까. 주위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대체로 전자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럼 동물의 세계에선 어떨까. 한 무리에서 사나운 놈과 유순한 놈이 먹이를 놓고 경쟁한다고 치자. 당연히 사나운 놈이 먹이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 생존경쟁에선 '나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는 호전적 이미지가 큰 무기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호전적이고 사나운 개체 수가 늘고 유순한 개체는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다. 유순한 놈들과 손쉽게 경쟁해온 사나운 놈들이 이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사나운 놈들의 숫자가 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먹이를 위해선 때로 목숨도 걸어야 한다. 싸움에서 보는 손해가 먹이의 가치보다 커질 수도 있다. 호전성의 이익은 작아지고 위험은 커진 셈이다. 이때부터 사나운 놈들의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생물학자들은 사나운 놈과 유순한 놈 간 수의 균형이 여기서 이뤄진다고 보기도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이 원리가 인간사회에도 통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조직에서나 유순하고 착해 빠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전적이고 거친 '악바리'도 있다. 성실한 사람이 있으면 닳고 닳은 '뺀질이'도 있는 법이다.

물론 외견상 '악바리'와 '뺀질이'가 '순둥이'를 누르고 늘 실리를 챙기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이 때문에 너도나도 '악바리'나 '뺀질이'가 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조직이 '악바리'로 가득 차면 모두가 피곤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또 '뺀질이'만 있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다행히 그 전에 '악바리'나 '뺀질이'로서 누릴 수 있는 추가 이득은 점점 0에 가까워진다. 이것이 0이 될 때가 바로 균형점이라고 프리드먼은 설명했다.

이 주장이 맞다면 너무 순하고 착해 늘 손해 보며 산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달리해 봄 직하다. 순하고 착한 성격이나 행동 전략을 굳이 바꿀 이유는 없다. 호전성과 유순함, 눈치와 성실은 균형을 이루게 돼 있므로 어느 편에 서든 마찬가지라고 한다. 타고난 대로 살라는 얘기인 모양이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