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 나누기 사실상 불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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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생산라인 두개 중 하나를 철거해 다른 곳에 설치하라는 지시는 말이 안된다. 돈 낭비가 심한 데다 기술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효성과 코오롱이 당진공장 인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 공장라인 2개 중 1개는 코오롱에, 나머지 1개는 사실상 효성에 주라는 내용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고합의 김덕호(42) 당진공장장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다.

공정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라인 분리가 가능한지, 분리해도 독자적으로 살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한 후 결정해야 했다"면서 "공정위가 정답을 못찾은 상태에서 내린 고육책"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생산현장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당사자들인 코오롱과 효성도 모두 마뜩찮은 표정이다. 한 라인을 뜯어가야 될 코오롱 측은 "철거 후 다시 설치하기가 불가능하다"며 불만이고, 효성 측은 "라인 두 개가 모두 있어야 정상 가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어떻게 결정했길래=공정위는 당시 고합 라인 두개를 모두 코오롱이 인수하되, 2개월 내에 한 라인을 뜯어가고 다른 한 라인과 공장부지는 제3자에게 되팔라고 결정했다. 코오롱이 가져갈 경우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고 판매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코오롱이 매각한다면 인수후보로는 효성이 가장 유력시된다.

공정위의 이같은 우려는 일리가 있다. 나일론 필름의 주요 생산업체인 코오롱·효성·고합 등 3사 중 코오롱이 점유율 45.9%로 1위 업체이기 때문이다. 현재 3위인 고합 공장을 인수하면 시장점유율은 59%가 되고, 2위인 효성 점유율의 두배가 된다.

그러나 공정위는 코오롱이 지난 8월 고합 매각입찰에서 가장 높은 값을 써내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우선매각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는 게 부담이 됐다. 게다가 코오롱과 효성의 경합이 워낙 치열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도 힘들었다. 결국 공정위는 라인 분리매각 결정이란 '묘수'를 찾아냈다.

◇모두의 불만을 산 결정=그러나 현장 사람들과 전문가들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철거 후 재설치가 기술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필름 생산설비(텐터)는 길이 50m로 한 세트인 데다, 높이가 똑같게 설치해야 하며^기계를 설치한 미쓰비시 측이 철거 후 재설치 경험이 거의 없어 정상 가동을 보증해줄 수 없을 정도라는 지적이다.

라인 한개론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철거된 자리에 새 라인을 깔 경우도 문제가 있다. 고합의 설비는 4년 전에 설치한 '중고품'이라는 설명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金공장장은 "한 지붕밑 두 라인을 묶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위가 원점에서 새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2개월 내 분리매각을 하지 않으면 코오롱을 제소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코오롱 측도 "공정위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된다"고 보고 있다.

분리매각시 다시 인수전에 나설 효성도 불안해하긴 마찬가지다.

효성 관계자는 "2개월 내에 매각해야 하지만 코오롱 측이 가격이 안맞다며 질질 끌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진=김영욱·김태진 기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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