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에 가는 딸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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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딸아. 네가 광화문에 촛불시위를 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아빠는 이 글을 쓴다. 아빠는 그냥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 너와 비슷한 또래의 미선이와 효순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 가 보았다.

효촌리는 한·미 간의 최대 현안 이슈로 떠오른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자리이지. 고갯길을 돌자마자 언덕이 나타나는데, 좁은 양방향 단선 차로에 갓길이 없고, 사람이 차도로 다녀야 하며, 유사시 피할 공간이 없었단다. 찻길 바로 옆이 경사져서 비킬 틈도 없는 그런 열악한 도로였단다.

사고가 난 그 날을 생각해보면 효순이와 미선이는 인도가 없기에 차도로 걷고 있었으며, 바로 언덕 위 건너편 도로에 탱크가 오고 있었고, 등 뒤에서는 굽어진 언덕길이라 장갑차의 행렬이 오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유사시에 피할 공간이 없었을 것이다. 장갑차의 미군 운전병도 탱크소리 때문에 경고를 듣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사고였지만 불가항력적인 면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더라.

그런데 너는 어떤 사람들로부터 "미군들이 애들을 고의로 죽였으며, 아무런 보상도 안 해주고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인가 뭔가 하는 미국법에 의해 그 사고병사들을 무죄 석방해서 미국에 빼돌려 버렸다"고 들었지.

사실 미군 지휘관들은 사고 이후 여중생들의 부모님들을 찾아가 사과하고, 1인당 1억9천만원씩 보상을 했었어. 너는 나에게서 상세한 설명을 듣고는 분개했었지. 왜냐하면 네가 들었던 사태 발전에 대한 사람들의 설명하고는 너무 달라서였지.

사고 후 지금까지 주한 미군 지휘관들과 미국의 국방장관·국무장관·대통령까지 한국에 사과를 했어. 그리고 SOFA 문제에 대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 훈련하던 사고병사들은 무죄평결로 본국에 갔지만, 미군 지휘관들은 사고에 대한 책임 때문에 문책을 당했단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주한 미군과 한국 정부 당국이 사고 직후 같이 현장 검증과 조사를 면밀하게 못한 점이라든지, 훈련시 사고 방지 대책을 철저하게 조치하지 못한 점은 한·미 양국의 정부가 책임을 느끼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어.

아빠의 걱정은 이 순간에 너희들에게 사고와 수습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인터넷과 벽보에 여중생들이 무참하게 깔려 죽은 장면을 계속 돌리면서 너희들 감정에 무차별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점이야. 미국을 반대하는 일부 선동가는 지난 50년간의 미군 범죄와 이 사고를 동일시하고, 일부는 이참에 미군 철수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

아빠도 대학생 때 반미 데모를 한 적이 있지. 그땐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었지. 그러나 미국은 1980년대 후반에 필리핀과 한국의 민주화를 도움으로써 생각보다 빨리 1990년대 한국에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어. 지금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께서도 미국 정치인들의 도움으로 망명지에서 무사히 고국에 돌아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어. 미국은 6·25전쟁 때 우리를 구했을 뿐 아니라 민주발전을 도왔으며, 계속 우리 안보를 지켜주는 좋은 친구가 됐음도 알아줬으면 한다.

이제 우리는 여중생 사고로 촉발된 이번 일을 잘 수습해야 하겠지. 앞으로 좁은 길에는 양 방향에 전차가 다니지 않도록 하고, 한·미 양국이 훈련을 할 때에 서로 같이하고, 민간인 보호를 제일 중요하게 여겨야지. 좁은 길에는 큰 장갑차들이 다니지 않도록 해야 하겠지. SOFA 운영 방법도 개선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최초 수사를 한·미 양국이 같이하여 이견이 없도록 해야 하겠지.

그리고 우리 정부는 세계 10위권에 오른 인권을 존중하는 선진 민주 한국답게, 앞으로 도로를 건설할 때 차량들을 위한 차도만 만들지 말고 인명을 중시해 노견과 인도를 만들어야 하겠지. 그래야 다른 사고들도 막을 수 있지 않겠니.

한·미 양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관계를 더욱 성숙하고 평등한 관계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시작했단다. 아마 앞으로는 남북한 관계의 발전속도에 맞춰 한·미 동맹관계도 변화시켜 나가는 일정표를 제시하게 될 것으로 본다. 앞으로는 한·미 양국이 민주주의와 인권과 시장경제의 발전을 공동으로 도모해 나가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딸아. 이제 아빠를 믿고 안심하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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