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경륜공단 눈물의 첫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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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지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어요. 열등감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21일 한체대를 27-23으로 누르고 창단 8개월여 만에 공식대회 첫승을 따낸 여자핸드볼 신생팀 창원경륜공단 주장 박준희(25)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퇴물'과 '떠돌이'의 집합체라는 비아냥에서 이제야 조금은 홀가분해질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1995년 황지여상을 졸업하고 실업팀 진주햄(알리안츠의 전신)에 진출할 때만 해도 박준희는 유망주에 속했다. 그러나 이상은·한선희·곽혜정 등 대표급 선배들이 줄줄이 있는 소속팀에서 그녀는 언제나 벤치 신세였고, 결국 99년 스물두살의 어린 나이에 현역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리곤 모교인 황지초등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꼬마들은 큰언니 같은 그녀의 말을 잘 따랐고 팀은 승승장구, 지도자 인생에 꽃이 피는 듯했다. 그러던 올 초 창원경륜공단이 창단하면서 멤버를 모은다는 말을 들었다.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 안했거든요."

망설이는 그녀를 설득한 것은 이향걸 감독이었다. "나는 '잘나가는' 선수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흔들렸고, 때마침 99년 금강고려가 해체되면서 유니폼을 벗었던 곽지현(24)과 무릎 부상으로 은퇴했던 고영복(25)도 합류한다는 소식에 용기를 냈다. 훈련은 철저히 체력 중심이었다. 창원 종합경기장 트랙을 오전이면 10㎞ 이상 뛰었고, 창원 용지공원과 인근 산도 훌륭한 체력 훈련장이었다. 그렇게 다져진 몸은 결국 강한 정신력으로 이어졌고, 고질적인 패배 의식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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