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할 대통령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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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먼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동시에 산적해 있는 장·단기 국정과제를 순조롭게 풀어 온 국민이 바라는 '성공한 대통령'이 돼주길 기원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21세기 초반에 일류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서 있습니다. 과거 농경화 시대나 산업화 시대의 우리나라는 국제 경쟁우위가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농토와 기후조건, 그리고 부족한 자연자원과 미약했던 자본 축적기반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할 수 있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지식, 즉 사람이 가장 중요한 지식기반 시대를 맞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를 이른 시일 내에 일류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을 기초를 닦는 일에 매진해주길 바랍니다.

물론 발등에 떨어진 단기 국정과제부터 잘 처리해야지요. 북한 핵문제나 한·미 동맹관계를 돈독히 하는 일 등이 그런 과제입니다. 이러한 단기 과제를 잘 처리하면서 중·장기 국정과제를 우선순위에 따라 집행하는 계획을 마련하는 일에 하루 속히 착수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 선거기간에 내놓은 각종 공약부터 종합적으로 정리해봐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 정치인은 선거운동은 시(詩)적인 반면 국정운영은 산문(散文)적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만 하루 속히 감성적인 선거 분위기에서 국정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오래 해온 서양에서도 "공약을 적게 한 후보를 뽑아야 실망이 적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거운동 기간에 표몰이를 위해 불가피하게 내놓은 공약의 상당부분은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요. 사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실천 불가능한 공약들을 추려내고 이를 국민에게 솔직히 인정하는 용기도 보여야 합니다.

세계화와 지식기반시대적 여건 속에서 우리나라가 일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필요한 중장기 과제 중에서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고 기업활동을 추스르는 일과 올바른 교육개혁을 통한 교육의 질적 개선을 도모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우선 법과 질서가 지켜지고 정치와 안보 면에서 안정된 나라, 그리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투명한 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은 필요한 것이지요. 글로벌 수준에 맞지 않는 정부 규제나 간섭은 철폐하고, 건전한 노사관계를 정립하며 유연한 노동시장을 육성하는 일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사회복지 체제를 구축하는 일, 각종 조세부담을 선진국 수준에 맞게 하는 일들도 중요합니다.

이와 동시에 교육 개혁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두시길 바랍니다. 경제·안보 등 여타 중요 국정분야 정책은 사계의 전문가들을 최대한 활용하십시오. 그 대신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교육개혁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중재하고, 설득하고 또 지원해야 합니다.

모든 국정이 그러하듯이 대통령의 리더십도 궁극적으로 정부조직을 통해 발휘됩니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것이 정부 조직개편입니다. 특히 정부 정책의 기획과 부처 간 조정, 그리고 대국민 설득 기능의 강화가 절실합니다. 얼마 전에 문제가 됐던 중국과의 마늘 문제나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문제도 따지고 보면 정부 내의 기획·조정 기능의 약화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 조직 개편과 함께 특히 경제 관련 주요 각료들은 국제적인 안목과 시장경제를 보는 시각 및 기본 철학이 비슷한 인사들로 구성해 팀워크가 잘 이뤄지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능한 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정부조직 개편과 올바른 인사를 통해 정부기능이 제대로 되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대통령당선자의 리더십으로 우리나라가 이른 시일 내에 일류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다면, 盧대통령당선자는 우리 역사에 빛날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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