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금감위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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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법정관리·화의 신청 기업을 증시에서 바로 퇴출시키는 문제를 놓고 금융감독위원회와 법원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법원이 지난주 공문을 보내 이 계획의 재고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금감위가 관련 규정을 원안대로 승인하자 법원이 다시 공개적으로 자료를 내고 제도 시행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일축하면서도 16일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직원을 법원에 보내 사정을 설명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위법부당한 조치"=법원은 퇴출기준을 '위법부당한 조치'라고 규정했다. 법정관리나 화의가 기업 회생을 위한 절차인데 시장 퇴출은 이를 봉쇄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법정관리·화의 기업의 회생은 대부분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M&A가 가능하려면 회사가 상장·등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지법 파산부 변동걸 부장판사는 "지난해 16개사, 올해는 17개사를 M&A를 통해 회생시켜 법정관리에서 조기 졸업시켰는데 이들이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였다면 M&A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회사정리 절차가 진행 중인 기업에 대해 2년 간의 유예기간을 준다는 것도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들 기업은 법 절차를 통해 10년 간에 걸친 회생기회를 줬는데 2년 만에 퇴출시키겠다는 것은 이런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법정관리나 화의는 기업회생 절차이고 퇴출기준은 투자자보호 장치인 만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금감위 관계자는 "M&A가 꼭 상장·등록 회사의 주권을 넘기는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며 구조조정펀드(CRC) 등을 이용해도 된다"며 "최근 부실기업 M&A를 가장한 우회등록(Backdoor Listing)은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법원은 강화된 퇴출기준에 구조조정촉진법 적용기업은 빠져있는 점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제도의 목적과 절차가 전혀 다를 바 없는데도 법정관리·화의 신청 기업만 퇴출시키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원은 구촉법 관리절차가 비공개로 추진돼 오히려 주가조작의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구촉법은 부실기업의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채권금융기관과 이를 감독하는 행정관청이 주도하는 절차인 만큼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변 부장판사는 "국민의 재산권을 크게 제약하는 절차를 이들 당사자에게만 맡길 경우 공정성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감위는 법정관리가 법률적 절차인 반면 채권단 관리는 사적인 계약인 만큼 같이 논의할 성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강경 대응도 불사=금감위로부터 무시를 당한 법원은 앞으로 이 조항에 걸려 희생되는 기업이 나올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금감위의 처분이 위법부당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법적인 보호절차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변 부장판사는 "퇴출기준이 시행돼 구체적인 사건이 되면 서울지법 파산부는 정리회사와 화의기업, 또는 신청기업의 회생에 필요하다면 제반 구제수단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럴 경우 강화된 퇴출기준에 걸린 회사가 법원에 가처분과 퇴출무효 소송을 제기할 경우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해석돼 이 기준이 사실상 사문화될 우려도 있어 금감위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최현철·김승현 기자

chd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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